뚜렷한 이유 없이 거부
‘조선’인, 통일 관점서 봐야
‘준통일 국적’ 제정 검토해야 일본의 꽃미남 배우 오다기리 조의 출연으로 관심을 끌었던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의 <박치기!>라는 영화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남았던 재일조선인의 처절한 삶의 흔적과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바라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한 뒤에 그동안 강제징용이나 징병,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이주해왔던 조선인의 국적을 일방적으로 ‘조선’으로 분류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부가 ‘한국’ 국적으로 전환했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조선’ 국적자로 남게 되었다. 즉, ‘조선’이라는 국적은 실체가 없는 하나의 분류기호일 뿐이고, 국적을 선택하지 않고 있는 재일 ‘조선’ 국적자는 사실 국적이 없는 무국적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조선’이라는 무국적자의 지위를 선택하게 된 것일까? 개개인별로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남북의 한쪽 국민이라는 ‘국적’이 재일조선인들에게는 하나의 민족을 두 개로 단절시켜 놓은 ‘분단 국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일조선인들의 문제는 분단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재일조선인들에게 ‘한국’ 국적 선택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재일조선인들의 한국 입국을 뚜렷한 근거 없이 거부하고 있다. 지난 6월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한·일 공동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초대된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정영환 연구원은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여행증명서 발급 불가’ 방침을 통보받고 한국에 오지 못했다. 재일동포 3세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극단인 ‘달오름’과 ‘MAY’의 제주도 초청 공연도 ‘조선’ 국적을 가진 단원에게 여행증명서가 발급되지 않아 참석을 하지 못했다. 한국에 공부하러 오는 ‘조선’ 국적 재일동포들의 여행증명서 발급도 줄줄이 거부당하거나 제한적으로 발급되고 있다. 명확한 기준이나 근거도 밝히지 않은 채 재일 ‘조선’ 국적자들의 입국을 거부하고, ‘한국’ 국적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일뿐더러, 그들을 버림받은 존재가 되게 만드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재일 ‘조선’ 국적자의 문제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있는 지금,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조선’ 국적의 재일동포들의 한국 입국 자유를 인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재일 ‘조선’ 국적자들에 대한 ‘준통일 국적’을 제정하는 문제 등에 대해 폭넓게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북한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민 루니’ 정대세 선수의 국적은 북한이 아닌 한국이다. 한국 국적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되었지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 조총련계 학교를 다니며 북한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 했고 북한은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K리그 수원삼성에서 미드필더로 활약중인 안영학 선수도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용병이 아닌 ‘자국 선수’로 뛰고 있다. 1999~2004년 5년 동안 외교통상부가 재일조선국적자들에게 발급한 여행증명서는 1만2000건에 이르렀지만, 안보상의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국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한국의 내일을 상상해본다.
조영관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10기 인턴 (블로그: http://withgongga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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