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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30 18:42 수정 : 2009.09.30 18:42





고교 시절 교류 시작한 한-일 모임
강제연행자 위령제에서 교감한
한국과 일본 사람들의 아픔의 눈물
화해와 용서는 멀리 있지 않다

최근 일본 정권이 55년 만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교체되어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가 변화의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민주당이 내세운 새로운 개혁의 공약들도 그러하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웃나라와의 관계에서 전 정권과는 조금 다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일본 역대 정권은 과거사를 부정하고 왜곡하거나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롯해 평화헌법을 바꾸려는 것 등인데, 이는 국제사회에서 큰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나 역시도 자연히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일본인들에 대한 인식도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 고등학교 시절 ‘하타 세미나’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일본인에 대한 나의 인식은 크게 바뀌게 되었다. ‘하타 세미나’는 일본 시코쿠 지역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과거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만행을 반성하고 바로잡아 한-일 양국 사이의 평화관계를 도모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여년 동안 일본 후쿠오카, 시코쿠 지방에 강제 연행되어 이름 없이 죽어간 조선인들의 무덤을 찾아내고 발굴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일들을 해왔다. 부산의 고교생들도 ‘공생의 여행’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이들과 6년째 교류를 계속하고 있고 그 노력들이 결실을 이루어 올해 8월9일, 일본 고치현에서 ‘쓰가댐 강제연행자 위령비’ 건립이 마무리되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내게 되었다.

특히 이번 위령제에는 부산의 남산놀이패가 참석하여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진혼제인 천도의식을 행하는 순서가 있었다. 타국 땅에서 강제징용에 내몰려 죽어간 조선인들을 위해 곡을 하고 영혼을 위로하는 춤을 추고, 베를 찢으며 통곡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모두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정서엔 ‘한’의 정서가 있다고 하는데 낯선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의 한은 얼마나 사무쳤을까. 하늘도 아는지 그날 많은 비가 내려 더욱더 슬픈 광경이었다.

그러나 위령제 도중 내 옆에서 우시는 한 일본인 할머니께서 ‘같은 일본인으로서 한국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여러분이 이런 일을 해주어서 너무 고맙고, 다시 이 지역에 온다면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그 말에서 이 슬픔이 슬픔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한-일간의 진정한 평화의 시작이며, 앞으로 양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은 제국주의 시절 아시아에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 회피하려 하거나 아예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분명 일본에서도 양심과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무조건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좀더 열린 마음으로 서로에 대해 더욱 알아가고자 할 때 양국의 관계 또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평화’라는 것은 거창하고 진부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랫동안 쌓여온 서로에 대한 오해들을 풀어나가며, 잘못을 반성하고자 하는 이런 시도들이야말로 평화를 향한 작은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위령제를 통해 그 가능성을 발견했고, 일본에서 ‘열린’ 역사관을 갖춘 정권이 교체된 이 좋은 시기에 갈등이 아닌 화해와 용서의 한-일 관계를 기대해 본다.

최예슬 부산 금정구 구서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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