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금지하고 나니
이를 대체할 교권 마땅치 않다
인격 존중하면서도
학생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규칙에 대해 국민 모두 고민해야 공교육의 목표가 단순히 학업성취도 평가나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 문제라도 더 많이 맞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적 자질과 교양을 갖추도록 하는 일임은 누구나가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과거 민주시민이 아닌 체제순응형 인간을 필요로 했던 시대에는 교사가 학생 위에 군림하며 필요하다면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학생들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이 용인되고 권장되었다. 다행히 1990년대 이후 학교에서의 체벌을 금지하자는 논의가 전개된 것은, 체벌이 갖는 폭력성이 우리 새싹들의 정신세계를 위축시키고 합리적인 사고력 대신 권위에 맹종하는 습성만을 길러주겠기에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학교 내 체벌을 금지하고 나니 문제가 생겼다. 기대했던 민주시민의 양성은 여전히 요원한 가운데, 학생들 생활지도만 더욱 힘들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사들 스스로 굳어진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이고,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회초리나 교실 뒤로 나가 손들고 있기와 같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체벌뿐만이 아니라, 벌 청소나 교사의 일방적 훈계처럼 학생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넓은 범주의 체벌까지 대체할 수 있는 제도적 차원의 교권보호책 확립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셋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방임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보상책을 써서 회유하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교육적 차원이라고 자위하며 여전히 체벌을 존속시키는 것이다. 물론 교사의 수업이 정말 재미있다면, 그래서 그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그 교사에 대해 열광할 수 있다면 체벌이 없어도 환상적인 학급 경영이 되겠지만, 현행 단편적 지식주입식 교육과정 아래서 그런 걸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 사회가 법이 있어서 유지가 되듯이, 학교 안에도 학생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 지금 있는 그런 권위주의적이거나 유명무실한 교칙 말고, 자유민주사회에 걸맞은, 학생들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들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그런 교칙 말이다. 한 예로 몇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수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학생이 있다면, 교사는 화를 낼 필요 없이 교칙에 따라 냉정히 교실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사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와 감정의 동요를 막을 수 있어서 좋고, 나머지 학생들은 교사의 불쾌한 표정과 목소리를 접하지 않음으로써 정신세계가 위축되지 않아서 좋으며, 무엇보다도 문제를 일으킨 학생 본인은 이 수업에 동참하고 싶다면 교사나 다른 학생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율성을 배우게 되니 일석삼조다.
자라나는 세대의 인격을 기성세대의 그것과 동등하게 존중할 줄 아는 사회라면 학교 안에서의 모든 체벌을 없애는 것이 분명히 맞다. 다만 그것이 학교뿐만이 아니라 사교육 현장과 각 가정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법 집행은 부족한 면이 있다. 이미 체벌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만 체벌을 하지 말라고 하니 선생님들만 죽을 맛이다.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과중해지는 학업 부담 속에서 수동적 학습자로 전락해 가고, 배우는 즐거움도, 꿈도 모두 잃어간다. 아아,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이제 이 근본적이고도 오래된 물음에 대해 국민 모두가 함께 해답을 고민해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최승진 춘천 부안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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