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 첫 기적 울린 지 110년
고속철도 시대 맞이했지만
도로망 밀려 빚잔치 그림자
철도의 신성장동력은 남북철로 며칠 전 한반도 종단열차(TKR)를 타고 신의주 단둥을 거쳐 외몽골 초원을 다녀왔다. 고구려인의 웅대한 기상이 서린 울란바토르의 광활한 대륙 너머로 지는 장엄한 석양, 그 열화의 흔적이 지금도 뜨겁다. 어제는 사흘 낮과 밤을 새워 라라의 테마가 흐르는 시베리아 평원을 달리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유라시아로 향하는 특대화물의 장대함에 넋을 놓기도 했으며 바이칼의 대양을 바라보며 그 푸르고 깊은 심연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올해로 철마가 제물포에서 첫 기적을 울린 지 110년째다. 20년을 넘게 철마를 모는 기관사로서의 감회는 남다르다. 돌이켜보면 철마는 우리 민족의 애환을 싣고 격동의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왔다. 일제에 의해 개화와 침탈이라는 양면성을 안고 처음 출발한 철마는 시대마다 다른 이름을 달고 국민과 함께해왔다. 징용과 노역의 비애를 싣고 남만 국경을 넘나들던 징용열차, 피난민을 싣고 포연 자옥한 전선을 달리던 피난열차, 머나먼 메콩강으로 젊은이들을 실어 나르던 파병열차, 개발시대의 꿈과 노동의 땀방울이 담긴 산업열차, 어린 누이들의 솜털 같은 희망을 실어 나르던 상경열차, 경제와 삶의 패턴을 반영하는 눈꽃, 와인열차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숨가쁘게 달려와 오늘 그 긴 여정을 역사의 플랫폼에 안착시킨다. 이러한 질곡의 시대를 넘어 한국철도는 급기야 시속 300㎞ 쾌감질주로 명명되는 고속철도(KTX)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외형과는 달리 철도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고속철도 부채와 높은 선로사용료, 그리고 공익유지비용만으로도 연 1조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선로는 아직도 100년 전 시설을 근간으로 하고 있고, 간선 철도망 대부분은 도로와의 경쟁에 밀려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정부의 오랜 도로중심 정책이 빚은 결과다. 더욱이 정부는 인천공항철도의 부실까지 철도에 떠맡긴다는 것이다. 1조원이 넘는 돈으로 민자 회사에 빚잔치를 해 주고 철도는 다시 암울한 적자원년으로 돌아가란 것이다. 철도의 부실은 곧 국민의 부실로 이어진다. 현 정부 들어 ‘저탄소 녹생성장’이라는 국가비전을 제시하며 그 정치적 탄착점을 4대강 살리기로 설정해 놓고 있다. 철도 역시 에너지 효율성과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철도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철도를 세계의 물류기지로 육성하고 화물과 여객수송 분담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타당한 말이지만 일정한 한계점도 있다. 협소한 반도에서 물자와 여객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길을 강물처럼 북으로 흐르게 하라. 다시 눈을 대륙으로 돌릴 때다. 상상해보라. 한 번에 수백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설원을 달리는 대륙횡단열차의 위용을, 시베리아·카자흐스탄의 원자재가 남진하고 부산항의 물자가 북상하는 철의 실크로드 시대를, 길이 뚫리면 사람이 오고 물자가 가고 다시 문화가 온다. 그래서 철길은 대륙 너머로 면면히 뻗어 있는 세계를 지향한다. 미래 철도 100년의 키워드는 거기 있다. 한때 대륙철도 연결사업이 가시화되기도 했지만 정권의 부침과 이념적 경화, 북핵문제 등으로 지금 다시 북으로 가는 철마는 덜컹거리고 있다. 안타깝다. 김만년 코레일 기관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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