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현실과 너무 다른 지침 들이대며
담임 추천 학생 급식비 9월부터 삭감
학교에 쏟아붓는 각종 돈은 그리 많은데
가난한 학생들 밥 몇그릇어치를 뺏어야 하나 최근 우리나라가 ‘문자 해독률과 학업 성취도’ 등의 결과에 힘입어 핀란드에 이어 2번째 교육복지 선진국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러나 최근 학교 현장에서 체감하는 학생들의 복지는 영 거꾸로 가고 있다. 팍팍한 삶의 그늘이 되어주어야 할 ‘복지’는 교육행정가들의 ‘전시행정’을 위한 수사가 되었다. 단적인 것이 저소득층 학생들의 급식비 지원에 관한 것이다. 1학기에 지원을 받던 학생이 당장 9월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학교급식 지침에 의하면, 급식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①기초수급자 ②법적 한부모가정의 자녀 ③지역·건강보험료 29000원 미만 납부 가정의 자녀’로 제한되어 있다. 그 외에 ‘담임교사 추천’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인원은 ‘신규 지원 대상(①+②+③)의 10%’이다. 이에 따르면 담임교사 추천은 학교별로 적게는 한두 명, 많아야 대여섯 명의 학생만 추가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만 해도 담임교사가 추천한 학생은 스무명을 훌쩍 넘었으며, 학교 내 ‘복지심사위원회’와 ‘학교운영위’를 통해 의견을 모은 바 ‘조부모·친지 등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학생, 파산한 가정의 자녀, 4인 가구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정의 자녀, 가족이 중병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가정의 자녀, 실직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녀’ 등의 기준을 정해 그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선정, 교육청에 예산을 요청해 8월까지 지원을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 남부교육청에서는 지침을 ‘임의로’ 어겼다며 행정처분를 내렸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어서 10%는 모든 학교에 똑같이 적용하기 어려운 기준인데, 어려운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 근무하며, 조금이라도 학생들의 빈곤한 현실에 공감하고 이를 고려하며 지원을 요청했던 담당 교사들, 교장선생님이 ‘주의’라는 행정처분을 받았다. 또 초과된 인원(13개 학교 300여명)의 급식비를 9월분부터는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하였다. 누구를 제외하란 말인가. 자영업 몰락에 스트레스로 쓰러진 부모의 자녀, 산업재해 후 퇴직한 친척 집에 얹혀사는 학생, 비정규직을 전전하다가 그나마 실직한 한부모 가정의 자녀를? 신문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경기침체로 이른바 ‘신빈곤층’이 300만명으로 늘어나고,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 계층의 월평균 적자액은 50만4683원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법 테두리 밖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은 날로 늘고 있는데 구제할 대안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의 경제적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는데, 무슨 면목으로 담임들이 ‘급식비’를 내라고 말하란 말인가. 지원할 돈이 없기 때문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학교마다 쏟아붓고 있는 돈은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학력 향상 중점학교’로 1억원, ‘사교육 없는 학교’로 1억원, ‘좋은 학교 자원 학교’로 7000만원, 방과후 시범학교로 4000만원 등 학교마다 수천만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예산이 의미있게 쓰이고 있는가는 의문이 든다. ‘학력 향상 중점학교’만 보더라도 ‘성적 하위 10%인 학생’들로 반을 구성해 강사를 배정했지만, 여름방학 중 학생들이 나오지 않아 간식으로 사둔 김밥을 버리기도 했다. 학생들의 출석률이 낮자 개근하면 ‘상품권’을 준다는 학교도 있고, 방과후 학교에 참여해서 성적이 향상된 학생들에게 장학금·현금을 준다는 학교도 있다. 바야흐로 돈 없는 학생, 공부 못하는 학생의 노골적인 수난 시대다. 학생 복지란 어렵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급식비를 안 냈다고 독촉받으며 모멸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학생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다그쳐 ‘일제고사’에서 ‘학업성취도’를 올리라고 독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상담·진로에 관한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학습장애·정서불안 등 심리적 요인을 찾아 위무해주고, 가정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것, ‘국영수사과’ 종합반을 편성해 매일 출석을 체크하는 뻔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국영수사과’의 그물이 훑지 못한 그들만의 재능을 계발할 다양하고 신나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따뜻한 밥 한 끼, 성적에 짓눌리지 않는 자존감, 즐거운 학교생활이 ‘학생 복지’의 기본이다. 교육 당국은 ‘발 치수만 믿고 자기 발을 재지 못하는’ 식의 행정을 그만두고, 저소득층 학생 지원을 위한 현실적인 기준을 새로 마련하라. 그도 아니면, 성남시 등을 본받아 시도자치단체와 어떻게 무상급식을 실시할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또한 방과후 사교육비 경감을 명분으로 한 예산이 진정 낭비가 없는지 검토하라. 공부 잘하는 아이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가난한 아이의 밥 몇 그릇어치 ‘장학금’을 받는 현실을 교육청이 조장하고 있다는 것을 반성할 일이다. 김호정 교사, 서울 구로구 개봉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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