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힘없는 연예인보다 ‘힘 있는 자’들에 분노하자 / 이영민 |
‘투피엠’(2PM)이라는 인기 아이돌 그룹의 재미동포 출신 리더(박재범)가 5년 전 한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에서 친구들과 나눈 사적인 대화에서 한국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대중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다 끝내 팀에서 자진 탈퇴했다. 대화 내용이 폭로된 지 불과 닷새 만의 일이다.
해당 글의 오독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재미동포 출신 연예인의 이른바 ‘한국 비하 혐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확신범’으로 몰리기 쉬웠다. 대중문화 저변에 흐르는 애국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를 자극한데다, 이미 ‘판례’(국민 정서를 해쳤다는 이유로 영구 입국금지를 당한 가수 유승준 사건)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당시 10대였던 재범의 글에는 성적인 의미를 내포한 속어(slang)도 눈에 띄었으니, 최근 연예인에게 엄격하게 요구되는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면, 그 ‘죄’는 사뭇 무거워진다.
물론 대중적 영향력이 큰 연예인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가치에 맞는 언행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을 공인으로 칭하며, 공인으로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과연 권력을 가진 ‘진짜 공인’들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로 심판하고 있는가?
대통령을 뽑을 땐 ‘도덕성이 밥 먹여 주느냐’고 되묻는가 하면, 권력형 비리에 얼룩진 정치인이 보란 듯이 다음 선거에도 공천되고 당선된다. 또 연예인 못지않게 공적 책임이 무거운 거대 기업 사주들의 주가조작과 상속비리, 세금포탈 등의 탈법적 행위도 ‘경제안정’을 핑계로 쉽게 눈감아준다. 정작 권력자들에게는 관대한 우리 사회가 대중 앞에 약자인 연예인들에 대해서만 관용 없고 용서 없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많은 사람이 정치인이나 기업인과 같은 권력엘리트의 불의에 대해 무력감을 이야기한다. 심정적으로는 공감하지만,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권력자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투피엠의 재범처럼 단 5일 만에 훅(!) 보낼 순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선거의 투표참여나 불매운동이나 소액주주운동과 같은 적법한 제도적 절차를 통해 개입하고 대응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진짜로 힘 있는 자’들이 행한 불의에 정당하게 분노하는 사회이길 기대한다.
이영민 서울 용산구 한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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