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서 날리는 석면 사이로
어린이집 아이들 통학
현장조사 해보니 기준치 초과 석면 검출
주민들 대책 요구해도 번번이 묵살 서울은 언제나 공사판이다. 특히 뉴타운사업 이후로 규모가 커져 수십톤짜리 대형 건설폐기물 운반차량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런 차들을 볼 때마다 근심걱정이다. 1급 발암물질 석면이 함유된 폐기물이 실려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석면은 광물질로 광산에서 캐내는 과정에서부터 제조, 사용, 폐기의 전 과정에서 환경 중으로 노출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대규모 뉴타운, 균형발전촉진 및 도시정비 등의 명목으로 현재 여의도 면적의 11배가 넘는 크기의 재개발 공사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가옥과 건물을 철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산먼지는 물론이고 석면먼지가 대기환경을 오염시킨다. 정부는 석면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왕십리뉴타운의 구립 어린이집 실태를 보면 정부 스스로 국민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공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어린이집, 학교, 노인시설 등 환경오염에 취약한 시설에 대한 대책 마련인 것은 상식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어린이집 120명의 아이와 학부모들은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철거공사 현장 사이로 통학하고 있다. 지난달 1일 아침 등원 시간에 어린이집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켜보니 맞벌이를 하는 학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또는 유모차를 끌고 건물철거 가림막 사이로 바쁘게 이동하고 있었다. 이곳이 서울시가 안심하고 맡기라면서 자녀를 더 낳으라고 권장하는 이른바 ‘서울형 어린이집’이고 그 주변의 공사장이 서울을 잘사는 곳으로 만든다는 ‘시범뉴타운’이다. 지역 주민들이 그동안 몇 차례 석면공해와 어린이집 문제 해결을 요구했지만 당국은 번번이 무시했다. 주민들의 요청으로 시민환경연구소가 현장조사를 해보니 석면 철거가 끝난 현장에서 최고 17%의 백석면 건축폐기물이 발견되고 대기에서는 기준치를 초과하는 석면이 검출되었다. 어린이집 놀이방 창문 먼지와 인근 아파트 가정집 부엌 및 베란다 먼지에서도 석면이 나왔다. 지난 3일 서울광장에 모인 학부모들의 얼굴엔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간호사가 직업이라는 한 엄마는 병원에서 보니 대부분의 폐암환자들이 소생하지 못하더라며 우리 아이들 어떡하냐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작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전국에서 진행된 7000여 석면 관련 사업장에 대해 당국이 현장조사를 한 건 4%에 불과했다. 현장조사 대상의 96%는 안전 규정조차 지키지 않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삼성본관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은평구청 등 대표적인 기업과 정부의 건물 리모델링 현장에서 석면 관리가 엉망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석면은 노출 후 오랜 잠복기를 거쳐 암을 일으킨다고 하여 ‘조용한 시한폭탄’이라고 불린다. 정부에 행정안전부라고 불리는 부처가 있고 서울시는 환경 담당 부서를 맑은환경본부라고 부른다지만 어린이들을 비산먼지와 석면에서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렇게 불릴 자격조차 없다. 뉴타운과 재개발사업이 안고 있는 석면시한폭탄을 안전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발암물질 후폭풍이 우리 사회에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왕십리 어린이집 석면 문제가 뉴타운 개발사업보다 시민 건강이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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