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제는 무력화 일보 직전
행정수도·국책기관 이전도 표류
지방분권 참뜻 되새겨야 한국의 지방자치는 두 정치적 거목의 필사적인 노력과 애정으로 성장했다. 바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이 단식까지 불사하며 30년 만에 다시 지방자치를 도입한 ‘선구자’였다면, 노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를 일구고 다진 ‘수호자’였다.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니, 든든한 버팀목을 잃은 허전함과 위기의식이 밀려온다. 김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 도입을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하버드대학의 라이샤워 교수가 “민주화는 지방자치제부터 시작하라”고 충고한 것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고 한다. 그는 일찌감치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예산 심의 때마다 지방자치 실시를 정부에 요구해 온 자칭 ‘미스터 지방자치’였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대전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내용의 ‘전면적인 지방자치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서울 인구가 400만이었는데, 이대로 가면 수도권 비대화로 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컸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요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결국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해 단식투쟁에 돌입했다가 ‘지방자치 전면 실시’를 얻어내고 단식을 풀었다. 노 전 대통령의 지방자치에 대한 애정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지방자치연구소’를 거점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한 그는 행정수도 이전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균형발전’을 대통령 임기 내내 주요한 국정 전략으로 삼았다. 중앙과 지방의 ‘조화와 균형’이란 화두를 그는 평생 놓지 않았다. 지난 4월 고향 방문길에 ‘함평 나비축제’ 현장에 들렀던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지방자치는 관리형이 아닌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사고를 갖고 있어야 성공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도 함평에 들러 ‘생태주의와 행정의 접목’에 대해 깊은 분석과 대안을 전해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분의 적극적인 노력과 애정에 힘입어 부활한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도 어느덧 14년이 넘었다. 20세기가 애덤 스미스가 말한 국부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향부론의 시대다. 향부론의 시대는 더 이상 중앙에 의존하지 않는 분산과 협력이 관건이다. 지방이 국부의 전진기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지방자치가 정착기를 넘어서 국가 부흥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방자치의 권한이 커질수록 중앙정치권의 곱지 않은 시선과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공천권을 둘러싼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방분권’이란 말이 아예 실종됐다. 참여정부가 터를 닦아 놓은 행정수도 이전과 국책기관 이전은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표류하는 모습이다. 책임을 무작정 외부로 돌릴 수만도 없다. 끝없이 터져 나오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비리는 일반 국민들의 지자체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을 키우고 있다. 주민자치와 참여민주주의의 근간인 ‘주민소환제’도 사실상 무력화 일보 직전에 있다. 주민소환제는 최선의 정책 결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통과절차’이다. 민주주의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며 지방자치단체장이 굳이 이를 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2010년 지방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두 분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인 지방자치의 참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때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목한 것처럼 지자체는 민주화의 동력이자 성장 엔진이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는 일정한 재정 분권과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과거에 비해 신장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기반 위에서 지방자치가 이념과 지역 갈등 등 오랫동안 짓눌러온 낡은 유물을 청산하고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의 기폭제로 작용하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이석형 함평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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