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말 따르는 나약한 개인이 다수인
의료시장은 완전경쟁 적용이 안 된다
의료 민영화는 병원의 사적 이익 위한 것 얼마 전 보훈병원은 인력 감축을 주축으로 한 경영 선진화 방안 때문에 큰 난리를 치렀다. 보훈병원은 인력 부족으로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인력을 늘려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라는 권고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정부는 병동을 신축하면서 오히려 인력을 더 줄이겠다고 하니 의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의사들의 반발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의사들의 밥줄이 끊긴다는 것이고, 하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사가 부족한데 이윤 창출을 이유로 의료서비스 공급을 지금보다 더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이 중 사회 전체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후자 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훈병원 전공의는 한 달에 많게는 1900여명의 환자를 진찰한다. 환자들의 평균 대기시간은 일반 대학병원보다 훨씬 긴 80여일에 이른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는 오로지 경제적 잣대로만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시장을 맹신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려는 현 정부의 국정 기조가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듯 불안할 따름이다. 정부가 이처럼 시장에만 맡겨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의료서비스 분야마저도 시장에 내던지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의료 민영화에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의료서비스 시장에는 합리적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 경쟁 시장은 합리적 개인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의료서비스 시장에서의 개인은 일관성이 없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예컨대 맹장염에 걸린 사람이 있다. 이 환자는 병원 응급실을 찾아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미 환자에게는 치료비 따위는 안중에 없다. 병원이 높은 치료비를 불러도 일단은 수술을 해달라고 사정할 것이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안정을 찾은 환자는 “내가 왜 이렇게 치료비를 비싸게 주어야 하지? 조금만 더 참고 다른 병원을 갈걸” 하며 후회를 하게 된다. 수술 전과 후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환자의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합리적 개인이 존재할 수 없는 의료서비스 시장에서 완전 경쟁을 외치는 것은 단순히 병원의 사적 이익만을 위하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의료서비스 시장에서는 소비자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기가 어렵다. 완전 경쟁 시장에서는 소비자주권도 전제로 한다. 소비자는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이익이 될지, 구입하려는 재화 또는 서비스는 어디에서 질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소비자주권이다. 그런데 의료서비스는 환자 자신이 받는 치료가 자신에게 좋은 것인지, 어느 병원에 어떤 의사가 자신의 병을 잘 고칠지도 알 수가 없다. 가령 의사가 엠아르아이(MRI)를 찍어야 한다고 말하면 정말로 이 검사가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소비자인 환자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환자 입장에서도 장땡인 것이다. 의료보험(건강보험) 시장이 불완전한 것도 의료서비스를 시장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사람은 미래에 닥칠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의료보험을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둔다면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물론, 그중에는 당장의 끼니 해결이 어려워 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위험이 닥친다면 결국 정부가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는 전 국민을 강제로 의료보험에 가입시킨다.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의료서비스 시장을 시장원리대로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의 말대로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도 중요하다.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병원 내 연구 사업을 지원하고, 인력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민영화’를 한다고 해서 의료서비스가 개선될지 확실치도 않고, 민영화로 다수의 사람들이 치료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의료 민영화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의 답이 될 수 없다.
김대영 서울 서초구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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