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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23 22:04 수정 : 2009.08.23 22:04

학교장 자율로 과목 줄어들고
국·영·수 중심 편성 강화돼
인격 도야 과목 입지 무너질 것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는 최근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을 발표했다. 수년간의 토론을 거쳐 마련된 ‘2007 개정 교육과정안’을 교육 현장에 채 적용해 보기도 전에 용도폐기하고, 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몇몇 교육학 전공자(교육과정)들의 탁상공론에 의해 단 6개월 만에 초안이 마련되고 그것을 올해 안으로 적용하겠다고 한다.

현재 정부 주도의 교육과정 구상안의 뼈대는 유사하지도 않은 과목을 임의로 통폐합해서 ‘교과군’을 설정하며, 또 이들 과목은 매학기별로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학기에 몰아서 ‘집중이수제’를 실시하며, 이러한 과정에 대해 학교장에게 20% 범위내 융통성 있게 운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국민의 목소리’로 명명된 이 구상안의 여론수렴 과정은 더 가관이다. 교사 500명, 학부모 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 여론을 수렴했다고 한다. 질문지의 구성이나 결과에 대해서도 설계자의 주관적 의도가 지나치게 개입되어 있어서 내용 타당도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구상안의 절차적 정당성은 보장될 수 없다. 교육의 한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학부모와 교사의 의견은 절차성의 편의성만을 고려하는 방법상의 문제로 간주되어야지 근본적인 교육 이념이나 내용으로 평가될 수는 없다.

구상안은 과목 수를 줄이기 위해 사회·도덕, 기술·가정 등의 교과군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두 과목을 하나의 교과군으로 간주해서 새로운 과목으로 인식하거나 반분해서 수업하는 방식이 고려될 수 있는데, 이는 학문의 정체성과 개별 학문공동체의 전통을 무시하는 행태다. 교육기본법 제9조 2항에서는 개별 학교와 교사(수)에게 학생에 대한 수업 외에 “학술 및 문화적 전통의 유지·발전”을 기본 임무로 명시하고 있다.

집중이수제가 도덕과에 적용될 경우, 중학교 3개 학년에 걸쳐 배우던 것이 학교장 자율운용 원칙에 따라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고교 윤리는 기존 3개의 심화과목이 있었는데 모두 없애버리고 ‘사회문화윤리’라고 하는 정체성 없는 교과군을 제시하고 있다. 아무리 양심적인 학교장이라고 해도 그 판단의 자율성은 학부모의 압력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학부모들은 현행 대학입시 구도로 볼 때, 자녀들이 이른바 도구과목이라 일컫는 국·영·수 중심의 수업을 더 많이 학습해야 궁극적으로는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인격 도야와 공동체 의식을 도모해야 하는 도덕 과목의 입지는 무너지게 된다. 우리나라 교육 이념을 규정하고 있는 교육기본법 제2조는 ‘홍익인간’, ‘민주시민’, ‘민주국가 발전’, ‘인류 공영’ 등을 강조하고 있다. 적어도 도덕 교과는 이러한 정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과의 독립성과 정체성이 폄훼되어선 안 된다.


박균열 경상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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