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백범 이후 첫 정치인
다시금 어두워진 한반도 정세
디제이 서거가 실로 안타깝다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냈으며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평생을 조국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한 이 시대의 마지막 ‘민족’ 지도자 김대중 선생이 서거했다. 위의 거창한 수사 중 특히 ‘민족’에다가 방점을 찍은 이유를 말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생각보다 이른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선생이 서거하기 사흘 전은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맞은 지 64돌이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그 기쁨도 잠시, 패전국도 아닌 우리 한반도는 전적으로 강대국들의 필요에 의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반으로 나뉘는 동시에 각 지역에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진주함으로써 제2의 식민기를 맞게 되었다. 졸지에 스스로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분열을 겪게 된 우리 민족은 그것을 용인하고 더욱 공고히 하려는 세력이 남북한의 정권을 쟁취함에 따라 반세기에 걸친 대립과 반목을 일삼게 되고, 이는 곧 이 땅의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된 것이며 세계 평화와 역사의 진보를 방해하는 근본 원인이 된 것이다. 수구세력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자랑스런 것이며 대한민국은 세계 각국의 존경을 받는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고. 우리나라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 마음은 추호도 없다. 전후 제3세계 국가 중에선 비교적 훌륭한 경제성장과 제도적 민주화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하지만 진실로 정의가 승리하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실현되며, 민족의 평화와 실질적 해방이 이루어진 역사인지에 대해선 부정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해방 정국에서의 몽양, 백범 노선의 패배와 친일세력과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의 승리 이후 초대 정부부터 와이에스(YS) 문민정부까지 정부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극단적 이분법을 통치 수단, 정권 유지 수단으로 철저하게 악용했다. 따라서 같은 민족인 북한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으며 민족의 통일은 요원해져만 갔다. 그러나 김대중 선생은 몽양, 백범 이후 한반도의 문제를 민족적 차원에서, 그리고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의 견지에서 파악한 최초의 정치인이다. 그의 긴 투쟁 끝에 이룩한 평화적 정권교체는 비로소 우리 민족이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는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의 필생의 과업이요, 민족의 영원한 숙제인 통일운동이 결실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또한 다시금 어두워지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선생의 서거는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써 선생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앞서 노무현의 숭고한 죽음이 그러했듯이 우리들은 김대중의 가치와 그것의 실천을 그의 죽음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선생의 마지막 메아리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선생의 죽음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마감되는 것을 본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절대 두렵지 않다.
김무락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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