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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6 16:03 수정 : 2005.01.16 16:03

지금까지처럼 ‘정부식’ 시각으로만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문제를 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지역주민’의 시각을 함께 반영해야 한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계기와 설득이 필요하다. 전체의 논리로 지역을 설득하기 어렵다. 부분의 논리에 전체가 귀를 기울어야 할 때다.

지난해 연말 원자력위원회는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을 고준위인 사용후 핵연료와 분리하여 추진하기로 의결하였다. 지난 18년 동안 실패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의 기본틀을 바꾸는 전환점을 마련한 셈이다. 원자력위원회의 새로운 결정은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선택하는 데 위험 요소를 대폭 감축시킨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지역주민들의 수용성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 대한 지역주민의 수용성은 단순한 위험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해당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하면, 대부분 중저준위 폐기물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상 얼마 전에 별도 사업으로 추진하던 양성자 가속기 사업의 부지는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서로 유치하려고 애를 썼다.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이것과 중저준위 폐기물과 어느 것이 더 안전한지 물으면, 거의 비슷하다고 말한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이라 하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핵쓰레기 매립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자기 지역의 오명으로 남을까 주민들은 걱정한다. 이러한 상정은 어쩌면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자꾸 핵폐기물 처분이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실패만 거듭하는 시행착오를 이제는 탈피하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단순히 덜 위험한 중저준위만 처분하는 폐기물 처분장이라고 말하는 것에 더하여, 주민들에게 자기 지역의 오명을 풀어줄 절차와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각 원자력발전소 부지에 이미 적재하고 있는 임시 저장고가 있다는 사실과 연계하여, 임시 저장소를 영구 저장소로 전환하여 건설하는 방안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정책포럼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원전지역 유지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임시 저장소를 영구 저장소로 바꾸고 자기 지역의 폐기물만 반입한다면 수용하겠다”는 분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지역주민의 또다른 걱정은 폐기물 처분장 건설에 대한 지원금을 받고 나면, 혐오시설만 자기 지역에 남고 잊혀진 지역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걱정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처분장을 그 지역의 시설로 정부가 건설하고, 그 지역에 적재하는 중저준위 원자력 폐기물의 양에 따라 부과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러한 제안들이 좀 엉뚱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처럼 ‘정부식’ 시각으로만 이 문제를 풀어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지역주민’의 시각을 함께 반영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화와 민주적 절차를 강조한다. 신뢰도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모자라서 문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이제는 외국의 사례만 읊조릴 것이 아니라, 한국민의 정서도 감싸는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한 단계 한 단계를 지역대표나 주민들과 다져가는 방법이 더 빨리 종착역에 도달하는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만 건설하려 한다고, 여태 반대하던 사람들이 쉽게 수용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계기와 설득이 필요하다. 전체의 논리와 부분의 논리는 항상 조화롭게 상응하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논리로 지역이라는 부분을 설득하기 어렵다. 이제는 부분의 논리에 전체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김영평/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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