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8.12 18:32 수정 : 2009.08.12 20:10

한국 체육 개선의 작은 성과로 발의된
운동선수 학습권 보장 법안에 대해
체육계 수장은 ‘논란거리’라며 폄하
박 회장은 어느 ‘선진국’ 예로 들었나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이 8월7일치 <중앙일보>에 기고한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이란 칼럼에서 몇몇 국회의원이 발의한 ‘학교체육법안’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박 회장이 조금은 투박하게 요약한 바에 따르면, 이 법안은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합숙 훈련을 금하고 훈련도 방과후와 주말에만 하게 하며, 일정 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선수는 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것이 요지다. 지난 몇 년 동안 체육계 안팎에서 제기된 학교 체육 개선의 작은 성과가 이 법안으로 요약된 셈인데, 이를 박 회장은 ‘논란거리’라고 일축한다.

이 법안은 그동안 한국 체육이 이룬 성과를 무시하거나 뛰어난 선수들의 기량 연마를 방해하려는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엘리트 체육의 뛰어난 업적이나 앞으로의 의의도 폄하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업적’이 좀더 아름답게 지속되어 값진 열매를 맺기 위해서라도 체육 교육의 시스템이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박 회장은 누누이 ‘선진국’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른바 ‘선진국’의 체육 교육이 얼마나 풍성하게 진행되는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선진국’의 수업은 엄격하면서도 유연하다. 엄격하다는 것은 학생 선수라고 해서 ‘열외’시키지 않는다는 점이고 유연하다는 것은 학생 선수의 조건이나 특성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농구팀의 하은주 선수는 현재 일본 세이토쿠대 영문과 4학년인데,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해서 4학년만 3년째 다니고 있다. 최근 최진수로 개명을 한, 미국 메릴랜대 소속의 김진수 선수도 엄격한 학사 관리 때문에 힘들어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두 선수 모두 이제는 수업 듣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박 회장은 인문계 직업반이나 실업계 학생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학생들은 물론 장래 직업에 연관된 수업을 많이 받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일반 과목도 배운다. 게다가 대체로 교실 안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학생 선수들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예사이고 지방에서 대회라도 열리면 한두 달이고 합숙 훈련을 하면서 아예 학교를 벗어난다. 끊이지 않는 폭력 사태는 이 엄격한 위계에 따른 ‘사각지대’에서 발생한다. 그렇게 학교에서 배제된 선수들은 커서도 사회라는 일상에서 배제되어 살아간다.

박 회장은 ‘이런 문제들로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을 때 세계 스포츠는 저만치 앞서’ 간다고 했는데, 바로 그 얘기를 해보자.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 우리나라는 네덜란드(19위), 덴마크(30위), 핀란드(44위), 스웨덴(56위), 아일랜드(62위) 등을 물리치고 7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나라들에 비하여 우리나라가 과연 ‘스포츠 선진국’인가. 학생 선수는 정규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일반 학생은 체육 시간에 다른 과목 문제를 풀고 있는 이 기형적인 상황은 대체 어느 ‘선진국’을 모델로 한 것인가.

박 회장은 ‘어릴 때부터 운동에 매진해온 우리의 미래 국가대표들은 정체성의 소용돌이에서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야말로 본부석에서나 주고받을 수 있는 한가로우면서도 공허한 발상이다. 그 아래의 땡볕 운동장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국가대표’라는 미명 아래 ‘어릴 때부터 운동에 매진’하도록 되어 있는 비극적 상황이, 박 회장의 강경한 입장으로 인하여 좀 더 지속될 듯하여, 진실로 참담하고 걱정스럽다.


정윤수 스포츠 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