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상설 심의’ 폐지하고 비상설 운영
인터넷에 맞는 자율규제 지원도 폐지
방송과 다른 인터넷 심의 속성 못살려
출신기관별 차등대우도 직원통합 해쳐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경영 혁신이나 효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간주되고 있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노무현 정부 때에는 ‘경영 혁신’, 이명박 정부에서는 ‘공기업 선진화’라는 내용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기관별로 내부적인 체질 개선을 할 틈도 없이 공공기관의 통합이 성급히 이뤄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공공기관이 맡은 분야에서 외면적인 효율성만을 중시하여 섣불리 통합했다간 공공기관의 애초 설립목적이 훼손되거나 전문성이 상쇄되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이런 큰 흐름 속에 내가 근무하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도 지난해 2월 방송위원회와 통합됐다. 아이피티브이(IPTV), 디엠비(DMB) 등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세계 추세에 맞는 효율적인 심의를 위해서였다. 그동안 두 기관에서 담당하던 방송과 통신의 내용 심의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통신 분야는 방송 분야와 다른 면이 있다. 심의 절차 면에서 지상파 티브이, 라디오 등 방송 분야는 공공성이 중시되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한 반면, 통신 분야는 인터넷의 전파성과 파급력에 따른 피해를 즉시 구제하기 위해 신속한 심의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통합 이후 통신심의 방식은 기존의 신속한 상설 심의 방식이 아닌 비상설 심의 방식 체제로 변경되어 신속성이 떨어졌다. 그리고 인터넷은 정보제공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공간이므로 한정된 채널을 대상으로 사후 규제하는 심의 방식보다는 예방적인 모니터링, 교육·홍보 등 자율정화 활동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이 예산 절감의 사유로 축소 내지 폐지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통신 분야 심의에 인터넷 특성이 덜 반영되게 되고 각종 자율규제 지원 사업이 축소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관 운영의 측면에서도 기관 통합은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다. 직원들의 고용승계, 직급, 보직, 임금 등의 문제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방송통신심의위의 경우 양 기관의 제반 문제들을 당사자 합의 원칙에 기반하여 풀어나가지 못한 탓에 통합 후 인터넷 심의 지원을 담당하는 계약직 직원들이 필요인력임에도 고용불안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고, 출신 기관별 직급·임금차별 문제 등이 제기되며 첨예한 노사 갈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가 겪고 있는 노사 갈등은 공정한 방송,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이라는 기관 본연의 임무 수행을 어렵게 하여, 이로 인한 피해는 곧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공공기관의 통합이 이루어지려면 효율성을 고려하면서 공익성의 실현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각 기관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을 고려하여 직원들 간에도 조화로운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중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장경식 서울 구로구 오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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