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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02 17:46 수정 : 2009.08.02 18:50

96년 유통개방 때 슈퍼 4만개 폐업
IMF 실업이 빚은 슈퍼 사장들 2차전
이들이 폐업하면 실업대란 이어져
기업형 슈퍼 대책이 곧 일자리 대책

할리우드 영화 중에 <유브 갓 메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작품에서 대형 체인 서점 사장인 톰 행크스와 동네 서점 주인 맥 라이언은 메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현실에서 박리다매와 에스프레소 커피 서비스까지 펼치는 톰 행크스의 대형 서점은 맥 라이언의 작은 어린이 전문 서점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도 이러한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의 ‘기업형 슈퍼마켓’이 동네 슈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영화와 다르게 현실은 ‘로맨틱’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2008년 기준 25.3%로,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 10% 안팎의 수치를 보이는 것에 비해 매우 높다. 이는 아이엠에프 경제위기의 유산이다.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이들이 퇴직금으로 창업 대열에 합류했다. 한때 자영업자 비율이 33%까지 올라갔다.

이런 한국의 특수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업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제나 소비자 편익을 운운하며 ‘기업형 슈퍼마켓’의 불가피성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의 주장대로 입점 뒤 ‘사후 대책’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국 자영업자들에게 이미 지난 10년은 ‘대책 없는’ 유통시장 개방으로 인한 시련의 시기였다. 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10년간 급격히 성장한 대형마트의 그늘 아래, 재래시장 3500곳이 문을 닫고 슈퍼마켓 4만개가 폐업했다. 대형 할인마트라는 골리앗과 싸워야 했던 중소상인들에게 이번 ‘기업형 슈퍼마켓’은 2차전인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형마트로 인한 재래시장의 몰락에 허둥지둥했던 경험을 잊고 또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르려 하고 있다.

정부의 이와 같은 ‘자메부 현상’(익숙한 것을 새로운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유난히 많은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곧 ‘실업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현 상황에서 정부가 대책 없이 중소상인과 대기업을 경쟁하게 만든다면 결과는 뻔하다. 안정된 직업을 잃고 비정규직에 종사하거나 희망근로 프로젝트와 같은 임시적인 사회복지 정책에 기대야만 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업종을 바꾸어 자영업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지만, 전국 동네 곳곳에 들어설 기업형 슈퍼가 취급하는 다양한 상품을 생각하면 그러한 대책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100만 해고 대란’을 걱정했고, 일자리 창출과 실업 대책 마련을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밝히고 있다. 정부 정책의 진실성이 의심받지 않으려면 정부는 ‘기업형 슈퍼마켓’ 논쟁을 단순히 ‘시장과 경쟁’의 논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실업 문제와 연계한 사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유지원 서울 은평구 불광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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