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는 성실한 20대
앞가림 잘하는 그들 매도하기보단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가치 멘토링’에 나서자 여기저기에서 오늘의 20대를 탓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의식이 없다, 자기 이익만 챙긴다, 불의에 분노할 줄 모른다, 버전은 다양하다. 어떤 분은 언론에 공개적으로 그런 의견을 공표하기도 한 모양이다. 20대를 탓한다고 오늘의 20대가 자기들을 탓하는 선배들의 뜻에 맞게 움직여줄 것인가? 아주 소수 그런 청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탓하는 이와 새로운 갈등만 생겨날 뿐이다. 지금의 많은 20대들이 ‘스펙’을 챙기는 데 열심인 것은 사실이다. 자신들에게 직접 이익이 있거나 재미가 있어야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다. 공익을 위해 사는 친구들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잘못일까? 20대를 탓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방향이 틀렸다. 그것은 우선, 70년대부터 본격화된 민주화운동의 결과 오늘의 많은 20대가 자기 스펙만 챙기면서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역사적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떤 분은 지금의 20대는 88만원 세대에 불과하기 때문에 짱돌을 들라고 외친다. 일리가 있지만, 다수의 20대들이 자기 앞가림만 하면서 살아도 되는 시대를 만든 것은 민주,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한 선배 세대의 덕이다.
다음으로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것도 아주 높이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성실이라는 덕목은 많은 가정과 학교의 가르침일 정도로 중요한 가치이지만, 성실하게 사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열심히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20대들은 나름대로 미래를 준비하고 때가 되면 언제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 열심히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20대를 향해서는 준열한 꾸짖음이 필요하겠지만, 다수의 ‘성실’한 20대를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마도 지금 20대들의 모습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은 가까이는 불과 10년 전, 멀리는 30~40년 전의 20대들이 ‘큰 문제’를 가지고 거리로 횃불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과 비교되기 때문이리라. 많은 이들이 죽어갔고 더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갔다. 그러나 지금 20대들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전대협, 한총련과 같이 일사불란하게 큰 규모로 움직이지는 않을지라도 많은 새로운 싹을 틔우고 있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생겨난 수많은 의미 있는 ‘카페’들을 보라. 그들은 함께 토론을 하고 의견을 표출하고 촛불을 든다. 선배들의 몫은 20대를 탓할 게 아니라 돕는 것이어야 한다. 가치를 위해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델이 되어야 하고 그들이 손 내밀 때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20대가 가치 있는 삶을 준비하고자 할 때 적극 도와주고 이끌어줄 수 있는 선배들의 구실이 필요하다. 이를 이름 하자면 ‘가치 멘토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 멘토링은 일반 멘토링에 더해 민주, 인권, 평화 같은 가치의 내용을 전파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후배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필자를 예로 들면, 예전에 시민운동에 잠깐 관여한 바 있고 지금은 북한학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평화의 가치를 고민하는 후배들의 요청이 있으면 도움을 줄 수 있다. 20대를 탓하지만 말고 가치 멘토링에 나서면 어떨까? 권영태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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