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 싸지면 소비 늘고
국민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한-EU FTA 건강보다 돈 중시 돈보다 건강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들 한다.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도 그런 생각을 할까?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은, 정부 쪽에서 협정을 국민들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본 것 같지 않다. 돈보다 건강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리 건강보다는 돈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에프티에이를 하면 와인과 위스키가 싼값에 공급된다. 유럽연합이 가장 눈독을 들여 온 시장이 바로 한국의 주류 시장이다. 영국에서 새로운 고급 스카치위스키를 출시할 때, 소비자의 반응을 한국 시장을 통해 가늠해 볼 정도로 한국은 매력적인 곳이다. 협정 체결로 고급 술을 싼값에 즐길 수 있게 되어서 좋아졌다는 주장을 정부와 일부 언론은 하고 있다. 관세가 낮아지면 적게는 13%에서 많게는 20%의 가격 인하 효과가 있으리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술값이 싸지면 소비가 늘고 그러면 음주 폐해는 비례하여 증가하게 된다. 술값이 10% 싸지면 주류 소비가 10.2%까지 늘고 가구당 보건의료 지출도 6% 증가한다는 것이 국내 연구에서 밝혀졌다. 비싼 술을 더 많이 마실 수 있게 되어 좋아졌다는 주장을 하기보다는 국민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결정을 했어야 국민을 위한 정부의 모습이다. 협정의 경제논리에 밀려 술값이 싸지도록 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 결과 국민 건강 수준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이미 우리나라의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폐해는 사교육비 수준과 비슷한 20조원이 넘는다. 음주 폐해 감소와 예방을 위해 가장 확실한 정책은 가격을 올려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이는 모든 국가에서 검증된 것이고 세계보건기구가 우리나라에 권장하는 정책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효과적인 정책 대안을 꺼내 들었다가 여론을 이유로 과감하게 포기하였다. 누구를 위한 여론인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서민을 위한 정부라면 부자보다 음주 폐해를 더 많이 보고 있는 서민을 위해 술값을 인상하여야 하는 것이고 에프티에이가 국민 건강에 미칠 영향을 정밀하게 따져 보았어야 한다. 와인과 위스키는 서민과는 거리가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에프티에이 영향은 서민들에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부자들도 국민이라는 점과 음주 문화는 상류 계층에서 하류 계층으로 전파된다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일부 상류층 사람들만 즐기던 와인 문화는 칠레와의 협정 타결로 중산층까지 확산되어 있다. 협정 타결로 술을 더 마시게 되면 병원에 자주 가게 되고 결국 건강보험료를 더 부담하는 결과가 온다. 서민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건강보험료 더 내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건강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정부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3조원에 달하는 주류세금은 음주 폐해 예방과 감소를 위해서는 단 한 푼도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담배에서 거둔 건강증진기금의 일부가 사용될 뿐이다. 이제라도 경제 관점이 아닌 국민 건강과 삶의 질 관점에서 협정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보건복지가족부만의 대책이 아닌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국가 전체의 음주 폐해 예방과 감소를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의 최근 동향을 교훈으로 새길 때다. 김광기 인제대학원대 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