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는 창과 칼을 내리쳐야 마땅
지금은 누구의 방패가 되고 있는가
출세 위해 권력 휘두르는 검사
역사 앞에 어찌 고개를 들겠는가 소싯적 꿈은 검사였다. 큰딸아이가 검사와 혼인하겠다고 했을 때 내심 더 기꺼웠던 까닭이기도 하다. 나는 검사 가족이다. 세상이 헝클어지지 않았다면 검사로 평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몇 해 전 법무부 책임을 맡았을 때 유능한 참모를 대통령보다 더 많이 거느릴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검사들과 일해 보니 과연 뛰어난 능력은 물론 헌신성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팽팽하게 긴장된 힘줄과 근육을 가진 그들은 장관인 나를 대부분 만족시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체결되었는지, 독소조항이 얼마나 많은 협정인지 일깨워준 것도 그들이었다. 나중에 협정에 반대해 단식한 내게 후배이자 스승인 그들이 대한민국 검사들이다. 근래 검찰이 여러 이유로 비판받을 때 새삼 가슴이 아팠던 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후배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곤 했다. 엠비 정부 출범 뒤 검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람들은 전문가로서 선배로서 비판을 거듭 주문했다. 나는 짐짓 모른체했다. 쉬 꾸짖기에는 사랑하는 가족이자 후배이고 부하들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너무 컸다. 검찰은 국민이 위임한 거룩한 방패와 투구를 쓴 자들이다. 마치 게들처럼 단단한 딱지나 뚜껑을 쓰고 있는 격이다. 그건 누군가를 지키고 보호하라는 뜻일 게다. 옳은 일을 할 때 그 방패는 어떤 창에도 마땅히 뚫리지 않아야만 한다. 권력의 요구와 세속적 유혹에는 강한 방패가 되고, 불의를 향해서는 창과 칼을 내리쳐야 하는 자리다. 지금 그 검찰은 누구의 방패가 되고 있는가. 아내가 게장을 담그는 걸 지켜보면서 내내 가시지 않은 생각이다. 지난 금요일 보수신문 1면마다 크게 실린 피디수첩 작가의 전자우편 공개 기사를 보면서 2년 전 한 신문이 신아무개씨 알몸 사진을 공개한 일이 떠오른 게 나뿐이 아닐 게다. 사건의 본질과 어떤 합리적 연관도 없고 공적 이익과도 무관한 사생활을 까발려 짓밟아 버리는 일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는 최소한의 인권과 기본윤리를 저버린 반인권적 패륜행위인 까닭이다. 개인 전자우편을 공개한 게 정말 오늘 검찰이 한 일인가. 그들이 내가 알고 있는 그 검사들이 맞는가. 참으로 믿기 어렵다. 검찰은 무엇보다 거대권력이나 자본의 횡포에서 국민의 권익과 안전을 지켜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인권의 본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검찰 권력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은 권력이 하사하고 임명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것이란 걸 한시라도 잊어버리면 곤란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얻은 권력이 검사 개인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토록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어떻게 국민과 역사 앞에 얼굴을 들 수 있을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검사들의 전자우편도 공개하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사생활까지 다 들춰내 언론에 뿌리면서 용산참사 수사기록은 무슨 이유로 감추는지 묻고 있다. 이게 어떻게 부당한 주장일 수가 있겠는가.
이참에 검찰은 스스로를 채찍질해 개혁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민심과 헌법에서 동떨어진 쓸쓸한 권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 것이다. 내부에 자정기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권력이 큰 위기가 닥쳐와도 치료법을 모르는 경우를 역사에서 숱하게 보았다. 오늘 검찰이 거기에 다다랐음을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검찰도 견제받아야 할 권력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공정하고 엄정한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을 먼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과적 수술을 면치 못할 게다. 피의사실 공표와 같은 명백한 위법행위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당장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힘이 클수록 자기통제를 할 수 있는 제어력과 준거 틀이 필요한 법이다. 게딱지에 밥을 비비다 문득 상을 물리고 말았다. 검찰이 국민의 방패가 될 때, 그 게딱지에 함께 밥을 비벼 먹으리라. 사랑스런 후배들과 시장통 밥집에 앉아 묵은 이야기를 할 날이 오기는 할까. 그날이 이를수록 좋으리라. 게장이 너무 익으면 맛을 잃어버리는 까닭이다. 천정배 민주당 의원·전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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