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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21 18:34 수정 : 2009.06.21 18:34

검찰은 권력에는 강한 방패가 되고
불의에는 창과 칼을 내리쳐야 마땅
지금은 누구의 방패가 되고 있는가
출세 위해 권력 휘두르는 검사
역사 앞에 어찌 고개를 들겠는가

소싯적 꿈은 검사였다. 큰딸아이가 검사와 혼인하겠다고 했을 때 내심 더 기꺼웠던 까닭이기도 하다. 나는 검사 가족이다. 세상이 헝클어지지 않았다면 검사로 평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몇 해 전 법무부 책임을 맡았을 때 유능한 참모를 대통령보다 더 많이 거느릴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검사들과 일해 보니 과연 뛰어난 능력은 물론 헌신성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팽팽하게 긴장된 힘줄과 근육을 가진 그들은 장관인 나를 대부분 만족시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체결되었는지, 독소조항이 얼마나 많은 협정인지 일깨워준 것도 그들이었다. 나중에 협정에 반대해 단식한 내게 후배이자 스승인 그들이 대한민국 검사들이다.

근래 검찰이 여러 이유로 비판받을 때 새삼 가슴이 아팠던 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후배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곤 했다. 엠비 정부 출범 뒤 검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람들은 전문가로서 선배로서 비판을 거듭 주문했다. 나는 짐짓 모른체했다. 쉬 꾸짖기에는 사랑하는 가족이자 후배이고 부하들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너무 컸다.

검찰은 국민이 위임한 거룩한 방패와 투구를 쓴 자들이다. 마치 게들처럼 단단한 딱지나 뚜껑을 쓰고 있는 격이다. 그건 누군가를 지키고 보호하라는 뜻일 게다. 옳은 일을 할 때 그 방패는 어떤 창에도 마땅히 뚫리지 않아야만 한다. 권력의 요구와 세속적 유혹에는 강한 방패가 되고, 불의를 향해서는 창과 칼을 내리쳐야 하는 자리다. 지금 그 검찰은 누구의 방패가 되고 있는가. 아내가 게장을 담그는 걸 지켜보면서 내내 가시지 않은 생각이다.

지난 금요일 보수신문 1면마다 크게 실린 피디수첩 작가의 전자우편 공개 기사를 보면서 2년 전 한 신문이 신아무개씨 알몸 사진을 공개한 일이 떠오른 게 나뿐이 아닐 게다. 사건의 본질과 어떤 합리적 연관도 없고 공적 이익과도 무관한 사생활을 까발려 짓밟아 버리는 일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는 최소한의 인권과 기본윤리를 저버린 반인권적 패륜행위인 까닭이다. 개인 전자우편을 공개한 게 정말 오늘 검찰이 한 일인가. 그들이 내가 알고 있는 그 검사들이 맞는가. 참으로 믿기 어렵다.

검찰은 무엇보다 거대권력이나 자본의 횡포에서 국민의 권익과 안전을 지켜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인권의 본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검찰 권력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은 권력이 하사하고 임명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것이란 걸 한시라도 잊어버리면 곤란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얻은 권력이 검사 개인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토록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어떻게 국민과 역사 앞에 얼굴을 들 수 있을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검사들의 전자우편도 공개하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사생활까지 다 들춰내 언론에 뿌리면서 용산참사 수사기록은 무슨 이유로 감추는지 묻고 있다. 이게 어떻게 부당한 주장일 수가 있겠는가.


이참에 검찰은 스스로를 채찍질해 개혁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민심과 헌법에서 동떨어진 쓸쓸한 권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 것이다. 내부에 자정기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권력이 큰 위기가 닥쳐와도 치료법을 모르는 경우를 역사에서 숱하게 보았다. 오늘 검찰이 거기에 다다랐음을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검찰도 견제받아야 할 권력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공정하고 엄정한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을 먼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과적 수술을 면치 못할 게다. 피의사실 공표와 같은 명백한 위법행위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당장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힘이 클수록 자기통제를 할 수 있는 제어력과 준거 틀이 필요한 법이다.

게딱지에 밥을 비비다 문득 상을 물리고 말았다. 검찰이 국민의 방패가 될 때, 그 게딱지에 함께 밥을 비벼 먹으리라. 사랑스런 후배들과 시장통 밥집에 앉아 묵은 이야기를 할 날이 오기는 할까. 그날이 이를수록 좋으리라. 게장이 너무 익으면 맛을 잃어버리는 까닭이다.

천정배 민주당 의원·전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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