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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03 21:52 수정 : 2009.06.03 21:52

합의제 무시한 문화부장관 지시

한 나라의 문화예술 정책은 시대정신의 선명한 투영이다. 예술은 적어도 정치적, 계급적 예속에서 벗어나 민주적, 자율적 기반을 구축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예술행정의 원칙으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즉 ‘팔길이만큼의 거리 원칙’을 신조로 삼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가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본관과 아르코미술관을 통합하여 ‘복합문화센터’(가칭 대학로아트센터)로 개편하겠다는 방침이 보도되었다.(<한겨레> 5월22일치)

문인들의 집필실과 공연계의 무대연습실로 제공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방침이 어떤 경로를 거쳐 구체화된 것일까? 이 지점에서 가장 크게 대두된 문제점은 다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문화부 장관이 위원회 직원들과 간담회에서 ‘여러 장르의 공연예술이 펼쳐지는 종합예술센터로 만들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갑자기 독재시대로 회귀한 듯한 이러한 장관의 독단적 지시는 문예위의 민간자율기구로서의 기능과 구실을 침해하는 매우 심각한 사태다. 문예위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1월 합의제로 출범했다. 과거 문화예술진흥원이라는 관치형태의 독임제 기관을 현장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11명의 위원들이 합의로 이끄는 민주기구인 것이다. 한마디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예술행정의 원칙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부 장관의 한마디에 현장 예술인들의 대표기구인 위원회의 사전 합의도출은 어디로 사라지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복합문화센터’가 등장할 수 있단 말인가?

두 번째는 아르코미술관을 무대연습실 내지는 복합적 예술공간으로 전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 자체가 건축공간의 역사성을 훼손하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나아가 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설립 당시의 민족고유문화를 육성하고 예술 전 장르를 지원하는 창설 이념의 역사적 의미를 기초부터 부정하는 일인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건축가 김수근에게 맡겨 1979년에 미술관·문예회관 대극장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문예위 본관은 문예 진흥을 위한 총괄사무와 자료관리 기능을, 미술관은 이렇다 할 전시장이 없었던 당시 신진 및 문제 작가 기획전시 및 국제교류전 개최를, 문예회관 대극장은 연극 및 공연장으로 그 기능을 균점시켰던 것이다.

현재의 문예위 대극장이나 대학로에 산재한 소극장을 살펴본다면, 무대가 없어서 공연을 올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무대연습실이 필요하다면 굳이 미술관으로 설계한 아르코미술관을 용도 변경할 것도 없다. 이미 문화부가 발표했듯이 ‘복합적 문화센터’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당인리 화력발전소, 옛 서울역사, 기무사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부지 등 다른 공간을 활용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30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적 건축공간이 문화부 장관의 한마디에 조변석개하거나, 문예위가 민간 자율기구로서의 독립성을 상실하고 장관 눈치보기에 급급해한다면 차라리 해체하는 게 나을 듯싶다. 건축가가 작고했다고 건축가의 설계 의도까지 함부로 짓밟는 것은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야 할 문화부가 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장동광 한국큐레이터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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