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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17 21:33 수정 : 2009.05.17 21:34

왜냐면

총독부 초대 특무대장 하며 갖은 악행
관동군 헌병 오장 하며 독립군 색출 고문
광복 뒤에는 사건 조작 민주인사 학살
문민정부때 국립묘지 옮겨온 묘 이장하라

현충일이 다가오고 있다.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과연 정체성이 바로 서있는 나라인지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독립운동가를 색출해 고문하고 고자질하는 일에 악명을 날리던 매국노들과 독립군 토벌에 서슬 퍼렇던 황군 간부 출신들이 애국자로 둔갑하여 양지바른 명당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 광복 후, 미군정의 “일본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면 미국을 위해서도 똑같이 충성할 것 아니겠는가”라는 계략과 오로지 정권 쟁취에만 혈안이 된 이승만이 정적 타도에 이용하겠다는 야망이 맞아떨어져 친일 세력이 그대로 등용되었다.

충성의 대상을 미국으로 바꾼 친일 분자들은 적반하장으로 민족의식이 있는 분들을 향해 망나니의 칼을 휘둘러댔다. 항일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민족 통일과 민주화를 부르짖던 인사들이 빨갱이로 몰려 잔인무도하게 살육당했다. 이들 반역의 무리들이 국가 공권력을 완전히 석권하여 기득권의 철옹성을 탄탄히 쌓아 대물림해 왔다.

최근엔 해묵은 ‘식민지 근대화론’이 활개를 치고 ‘건국 60주년’이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을 폄훼하면서 이승만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봐야 한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들은 일제에 빌붙었다가 다시 미군정에 빌붙어 6·25 전후에는 무고한 민간인을 불법 학살하고 민족·민주세력 탄압에 앞장선 자들을 오히려 우러르고 있으니 땅을 쳐 통곡할 일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충남지부는 그 대표적 인물인 김창룡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파내가라는 운동을 줄기차게 펼치고 있다. 오는 현충일에는 ‘김창룡 그는 누구인가?’라는 홍보 소책자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민족 정의 앞에 불의를 악독하게 일삼았던 이들의 행적을 세상에 널리 알림은 3·1정신과 4·19정신으로 표현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김창룡은 그의 말 한마디면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던 초대 특무대장이었다. 그는 만주 관동군 헌병 오장으로 50건이 넘는 항일 독립운동 조직들을 색출해 투옥하고 고문했던 인물이다. 광복한 뒤에는 이른바 군부 내 좌익 소탕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사건을 조작하여 민족·민주 인사들을 학살함으로써 이승만 독재 정권의 초석을 다지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는 지금도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에 깊숙이 관여한 배후로 지목받고 있다. 그가 이승만의 주구 역에 얼마나 충실했으면 1956년 1월 남한 주둔 미국 첩보기관(CIC)은 김창룡에 대해 “이승만이 직접 하기 곤란한 궂은일을 대신 해주는 청부업자와 같은 존재”라 평가했겠는가?

친일 매국노들의 묘를 국립묘지 밖으로 옮기라 함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거기에 모신 순국선열들과 호국영현들의 거룩한 뜻을 높이 받드는 일이다. 하지만 군사독재 시절에 기왕 안장된 묘까지 굳이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거기 들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교훈하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창룡의 경우는 다르다. 이승만의 총애만 믿고 오만 방자했던 그가 자기 부하의 손에 살해된 뒤 다른 곳에 묻혀 있다가 1998년 2월 13일 김영삼 정부 때 슬그머니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군사독재 시대가 아닌 문민정부 시대에 옮겼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민주시대를 사는 국민들이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기만이요 모독이다.

김창룡의 가족 친지들에게 당부한다. 진정으로 그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의 추한 악행이 여러모로 불거져 더 불명예스럽게 되기 전에 자진해서 그의 묘를 원래 장소로 이장하기를 바란다. 민족사의 악인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도록 노출시켜 욕먹게 하는 것이 뭐 그리 좋은 일이겠는가? 역사는 정의와 진실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공동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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