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지난달 발의 보험업법 개정안개인질병정보 요청권 포함
얼굴도 모르는 보험회사 직원이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알게 된다면? “고객님! 신용조회 없이 100만~3000만원 대출해 드립니다. ○○캐피탈(이벤트) ▶ 5분 승인/ 연체자 가능/ 30분 입금” 이제 이런 스팸 문자가 낯설지 않다. 하루에 한 번씩 꾸준히 봐서 내 눈과 머리는 그런 문자에 익숙해졌다. 이미 몇 차례 겪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처음에는 궁금했던 ‘대체 내 정보를 어떻게 알았을까’에 대한 답도 스스로 얻었기 때문이다. 다만, 부디 하루 한 번씩 나에게 스팸 문자를 보내는 그가 휴대전화번호 정도만 알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지난 3월16일 ○○○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에서 금융위원회가 보험사기의 적발 및 방지에 관한 조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국가, 공공단체 등에 관련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개인질병정보 요청권’을 명시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제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몸 구석구석까지 알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이는 2008년 12월 금융위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시민단체, 보건노조 등의 반발과 보건복지가족부의 반대로 질병정보 공유와 관련된 사항이 배제된 채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 석 달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의 개인질병정보 요청권에 이토록 노심초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보험회사가 특정인에 대해 정보 확인 요청을 하면, 금융위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개인질병정보를 통해 확인하겠다’라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금융위는 정보 확인 요청을 한 보험회사에 그 결과를 통보해 주어야만 한다. 현재도 경찰과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데, 금융위는 그 이전 단계에서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진료 정보와 질환 치료 기록 등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이것을 주워 챙긴 보험회사가 이를 보험 영업에 활용할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의 세부자료 요청 대상 기준 예시에 ‘최근 3년간 총 입원일이 180일 이상이고 보험금 청구 금액이 5천만원 이상인 자’라고 되어 있으며, 이 경우는 암 환자, 심혈관 질환자, 뇌혈관 질환자 등 거의 모든 중증 질환자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중증 질환자를 보험사기자로 의심하여 조사하겠다는 것이며, 중증 질환으로 많은 보험금을 지급받기만 하면 세부적인 개인질병 정보를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보험사와 관계기관은 보험사기로 빠져나가는 보험금이 한 해 2조2천억원에 이르고, 2008년의 보험사기 적발 실적은 보험사기 규모의 11%밖에 안 된다고 하며 보험업법의 개정을 역설하고 있다. 백번 양보하여 보험사기 근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더라도 어째서 그것이 국민 권익을 흔들 수 있는 개인질병정보를 담보로 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세계 어느 나라도 보험사기 수사를 위해 공공기관이 보유한 국민의 개인정보 공개를 허락하지 않는데도 우리나라는 정부가 나서서 보험사의 일을 쉽게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만약 간암 진단을 받고 힘겹게 간 이식 수술을 받아 지겨운 병원 생활을 견뎌내고 퇴원한 뒤, 혹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 한쪽을 절단하고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 수없이 고민하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퇴원한 뒤, 몇 년 전 가입해 놓았던 보험으로 병원비를 충당하겠는가? 그렇다면 이제껏 살아오면서 진료받은 모든 명세까지 이미 보험사 직원이 검토한 뒤 당신의 몸 구석구석을 모조리 알고 주의 깊게 지켜보게 될 것임을 준비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박정은 인천 계양구 계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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