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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29 21:12 수정 : 2009.03.29 21:12

왜냐면

보르네오 섬 밀림 출신 출연시켜
문명사회에 온 원시인 취급
참된 다문화주의 구현과 거리 멀어

1899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선 특이한 전시품이 있었다. 바로 ‘사람’이었다. 3세계 원주민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 ‘인종 전시’를 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그 후 110년이나 지났지만 ‘원시인’을 구경거리로밖에 보지 않는 심리가 여전한 듯하다.

<에스비에스>(SBS)의 드라마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는 피부색이 다른 배우가 한 명 나온다. 그의 이름은 얀티(하이옌).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밀림 오지의 소수민족 출신이라고 한다.

3회에서 얀티는 다친 수남(윤다훈)을 발견하고 간호한다. 그런데 부족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하고 이틀 동안 시간을 끌다가 발각되고, 결국 둘 다 교수형에 처할 위기에 몰린다. 섹스를 ‘자식 낳는 수단’으로만 생각해서 정조에 민감한 부족인데, 약혼자가 있는 여자가 외간남자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수남은 얀티와 결혼을 하고 한국에 데려온다. 정조 관념에 민감한 부족 출신이라는 여성이 바깥에서 온 피부색이 다른 남자에게 반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모험을 한 것이다. 이 문제는 한국에 와서 더 심해진다. 6회에서 얀티는 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한국말인 ‘오파’(오빠)만 외치면서 사라진 수남을 찾고, 계속 전화를 하고, 어찌 택시 탈 줄은 알았는지 수남의 집으로 와서 오파를 찾는다. ‘순수한 원시상태의’ 여성은 남성에게 지극히 순종적이고 의존적이며, 심지어 피부가 하얀 남자를 좋아한다는 진부한 인종적 편견이 반영돼 있다.

게다가 얀티는 ‘문명사회’인 한국에 와서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신발을 벗은 채 걷고,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보면 고향을 떠올리듯 얼굴이 밝아지면서 껴안고, 공항에서 토속 춤을 추더니, 마침내는 치마 위에 팬티를 입은 채로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만국박람회 ‘인종 전시’에 전시된 사람들은, 호응을 위해서 실제로는 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하도록 교육받았다. 그 내용은 구경꾼들이 보기에 야만인들이 할 법한 미개한 행동들이라고 여겨진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인종적으로 위계질서가 부여된다는 점이다. ‘문명인의 관점’에서 보기에 기괴한 행동은 열등성의 표지로 비치고, 자연히 ‘나’는 우월하다는 정체성을 획득한다. 극 중에선 아예 얀티를 버리고 몰래 도망가려는 장면에서 ‘이게 문명인이 할 짓이냐’는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밀림의 원주민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1899년과 2009년 사이에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대로라면 이 드라마는 한국의 인종적 편견을 해소하기는커녕 더 강화할 뿐이다. 이 드라마가 한국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참된 다문화주의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덕호 고려대 사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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