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이건희 회장 항의시위자에 고려대의 반지성적 징계 방침 |
학교측은 의사표현의 자유는 있으나 폭력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들 5인이 당일 폭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나를 포함한 5인은 교직원과 삼성 경호원들이 학생들을 밀치면서 시작된 소요를 학교측과 학생들을 떼어놓으며 연좌시위로 전환하자고 호소했다.
고려대 학생들은 지난 5월2일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에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고려대의 잘못과 삼성의 노동탄압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고려대 당국은 비판과 토론의 전당이 되어야 할 대학에서 비판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징계를 말하고 있다.
학교는 5월11일 학처장단 회의가 끝난 후 총학생회에 사범대 학생회장인 나를 포함해서 다함께 고대모임 대표 서범진, 정경대 학생회장 조영관, 문과대 학생회장 이유미, 경영대 학생회장 홍명교 등 다섯 학생이 상벌위원회로 회부·징계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미 고려대 당국은 2004년 등록금 투쟁 때 학생들이 본관 점거 농성을 벌였다고 14명의 학생들에게 정학·경고를 내린 전례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협박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작년에 징계절차를 간소화하는 개악이 있었기 때문에 징계 가능성은 더욱 커 보인다.
그러나 학교측이 5인을 시위주동자로 규정하고 징계후보로 지목한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학교측은 의사표현의 자유는 있으나 폭력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들 5인이 당일 폭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나를 포함한 5인은 교직원과 삼성 경호원들이 학생들을 밀치면서 시작된 소요를 학교측과 학생들을 떼어놓으며 연좌시위로 전환하자고 호소했고 학생들은 이에 호응해서 몸싸움을 그쳤다.
시위를 주도했기 때문에 학교측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더욱 황당하다. 총 20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위에서 주동자 5명만 가려내는 것도 우습거니와 학교는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는데 시위를 주도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내세운다면 그야말로 학교측이 비판의 자유를 침해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 학생처 직원의 말에 따르면 징계 기준이 없으니까 시위에 참여한 학생대표들과 언론에 많이 나온 학생 한 명을 징계 대상자로 뽑았다는데 그만큼 황당한 것도 없다. 학교측은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고도 징계를 추진하고 싶다면 그 근거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은 학교측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 학생들의 시위에 전경을 불러 안암역에 대기시켜 놓고, 운동부 학생들을 시위학생들과 대치시키려 하고(학생처 직원의 증언), 교직원들로 바리케이드를 치게 하고, 사설 경호원들을 동원해 정문을 폐쇄하는 것이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418억을 기부했다고 대가성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것이야말로 한국사회 대학의 천박성을 입증하는 사실로 명백히 기록될 텐데 어찌 학교는 학생들의 시위 탓만 하면서 자성의 목소리는 없는가?
고려대 당국은 학생들을 ‘반지성적’이고 ‘비민주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학교의 노동탄압 모습 또한 삼성과 다르지 않은데, 학내 환경미화원·경비원 분들은 2002년에 한 달 임금이 43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하자 학교측은 폭력·협박·회유로 이를 막았다. 이것이야말로 반지성적이고 비민주적이지 않은가? 학교는 같은 자리에서 30년씩 일해 온 학내시설관리 노동자들에게 감사패 하나 주지 않았고, 100주년 기념행사 초청장 하나 주지 않았다.
학교는 올해 초 등록금책정위원회 회의에서 10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도서구입비를 17억 삭감하고 실험실습비를 23억 삭감한 예산안을 가져왔다. 이 예산안에는 학생들의 등록금 47억원이 100주년 기념관 내부 치장에 쓰인다고 되어 있었다. 학교 당국이 지성과 민주를 말하고 싶다면 학생들의 정당한 비판에는 징계가 아니라 논쟁으로 답하고 화려한 외향에만 신경 쓰는 정책에서 벗어나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는 시설관리노동자·시간강사들과 낮은 수업의 질과 부족한 자치활동 지원 탓에 불만인 학생들의 의견부터 수렴해야 할 것이다.
안형우/고려대 사범대 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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