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홀로코스트’ 희생양 이미지 업은 이스라엘그들은 스스로 약자 짓밟는 학살자로
폭격 이전부터 가자지구 의약품 봉쇄
점령 위한 침공 끈질기고 잔인해 지난 12월27일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으로 600명 이상이 사망했고 3000명 이상이 다쳤다. 인간의 목숨이 이토록 하찮게 취급되는 것에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이스라엘은 2월에 있을 국내 총선 승리를 위해 무고한 민간인들 특히 세 살, 다섯 살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이렇게 빼앗을 수 있는가. 자신들의 권력과 물적 토대를 위해 자국의 열여덟, 열아홉 어린 청년들을 징병하여 전쟁터로 내모는 것이 정당한가. 누구를 위한 침공이고 누구를 위한 학살인가? 유대인들은 2천여년 전 자신들의 조상이 살았던 땅이라고 밀고 들어가 서방세계를 등에 업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워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억압하고 추방하며 지금까지 왔다. 1948년 이래 얼마나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가 흘렀는가. 2차 세계대전 당시 400만명 이상의 유대인이 죽은 홀로코스트를 통해 인류는 전쟁과 학살의 교훈을 얻었다. 앞으로 다시는 어떤 민족도 그런 비극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말이다. 어떤 학살도 용인하고 묵인하고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말이다. 그러나 역사의 뒤를 돌아보면 당시에 더 많은 소련인들이 죽었고 기록에조차 남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럼에도 홀로코스트가 모든 학살을 대표하는 인류의 범죄가 된 것은 생존자들의 치열한 기록과 저항 정신에 의한 것이었고, 책과 영화·언론을 통한 반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 홀로코스트는 인류 전체를 위한 교훈이 아니라 단순히 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된 한 민족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어 버렸다. 지금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은 이전에 그들이 살던 영토의 22%밖에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서안과 가자지구 두 개의 자치지역으로 나누고 8미터에 가까운 고립 장벽까지 세워 감옥으로 만들고 있다. 자신들이 농사짓던 땅을 일구러 가거나 일터로 가기 위해 경계선을 넘어야 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몇 시간씩 서서 기다리게 하며 모멸감을 주는 강자의 만용을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에 끊임없이 자국민을 이주시켜 정착촌을 형성하고 이를 방위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폭격 이전부터 가자지구를 봉쇄하여 식량과 의약품 반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봉쇄를 풀라는 수제 로켓포 공격을 빌미로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한 이스라엘 장성은 이번 전쟁에서 2006년 레바논 전쟁 당시의 희생자 2000∼3000명을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가. 그 숫자를 채울 때까지 학살을 계속하겠다는 건가. 이스라엘의 탱크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돌멩이가 맞서고 있다. 이것은 전쟁이라고, 자위권이라고 이야기할 수조차 없다. 침략이고 학살일 뿐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삶의 기쁨과 지상의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을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당장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학살을 멈춰야 한다. 김현미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회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