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22 20:59
수정 : 2008.10.22 20:59
왜냐면
‘스카이대 소수정예주의는 답이 아니다’에 대한 반론
어떤 지식인의 사회문제에 대한 짧은 신문칼럼이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왔던 그 문제에 대한 모든 것을 드러낼 순 없다. 또한 그 칼럼에 실린 생각을 비판하기 위해, 그 지식인의 예전 글을 다 찾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지훈씨가 강준만 교수의 ‘사교육 착취 시스템’ 칼럼을 비판한 글을 읽으며 위와 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국 사회가 과도한 학벌사회이며, 이 학벌사회가 학부모의 명문대 집착을 낳고, 이 명문대 집착이 한국 사회 사교육시장의 과열을 불러일으킨다는 데 강 교수와 정씨의 생각은 일치한다. 그러나 정씨는 강 교수의 이른바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일컬음) 정예화 방안이 상처를 덧나게 하는 주장이라고 말한다. 정씨는 근본모순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이 답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방법은 무엇일까? 학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설득해야 할까? 아니면 각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학벌 위주로 사람을 채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야 할까?
이미 강 교수는 오래전에 학벌사회의 대안으로 대학별 특성화 대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대학별 특성화는 대학별로 단과대학을 특성화시켜 스카이로 집중된 좁은 문을 넓히자는 것이었으며, 이 주장은 여러 교육학자의 공감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 비교적 온건한 대안인 위 주장이 폐기된 것은, 우리 사회의 상층부에 있는 스카이 학벌권력이 이러한 대안을 실천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데 기인할 것이다.
강 교수의 스카이 소수정예주의는 위와 같은 온건한 대안마저도 통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벌권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최소한의 방안이다. 스카이가 소수정예화된다고 해서 물론 사교육 시장이 곧바로 진정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카이를 나온 사람들이 적어지게 되면 지금처럼 스카이가 사회의 모든 부문을 휩쓰는 현상은 줄어들 것이다. 요컨대 스카이의 학벌권력은 유지되지만, 그 학벌권력이 뻗어대는 가지의 수는 숫자상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 나머지 부분을 비스카이대 학생들이 채워나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스카이 졸업생들이 줄어든 곳을 비스카이 학생들이 채워나간다면, 대학 입학 이후에 다시 한 번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박승범 전주 덕진구 인후동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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