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교원평가제 반대라는 이름의 투쟁은귀족노조를 떠올리게 한다
구조조정의 도구나 노동자 탄압책이라면
전교조에서 주관해 평가방식을 만들라
그것이 참교육을 위한 길이다 교원평가제를 도입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희비가 가장 극명하게 엇갈린 집단은 과연 어디일까? 뉴라이트와 노동계? 보수와 진보? 아니다. 나름대로 ‘진보’라는 진영 안에서 존재하는 두 집단인 청소년-학생 운동계와 교원노조 운동이었다. 청소년-학생 인권운동을 주축으로 하는 교원평가제 찬성 집단에서는, 부적격 교사의 재교육과 감시를 위해서 교원평가제를 주장했다. 일상적인 인권침해가 만연하는 교육 현장에서, 개인의 폭력성을 여과 없이 교육 현장에서 풀어내는 일부 교사들이라도 교원평가제라는 틀을 이용해서 걸러낼 수 있다면, 이것이 현장에서의 인권 태 향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라 본다. 하지만 전교조를 중심으로 하는 교원노조-노동계는 교원평가제에 극렬한 반대 태도를 보이면서 현재까지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교원평가제의 시행에 따른 평가권자의 독단적인 평가와, 해당 결과를 가지고 벌어지는 교원노조에 대한 차별과 탄압, 구조조정의 빌미로 이용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마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사실, 두 쪽 다 틀린 부분은 없어 보인다. 현재 교육 현장에서 전교조가 차별받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진다”라고 주장한 교육감 후보가 당선되고, 일선 교육 현장에서도 별다를 것 없이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전교조를 무슨 ‘암약하고 있는 혁명집단’ 수준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학생단체의 말대로 부적격 교사 역시 그만큼 지천에 널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원평가제 반대’라는 이름의 투쟁은 사실 무섭다. 마치 ‘귀족 노조’를 연상하게 하는 저 문장의 울림은 사실 얼핏 듣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이기적인 냄새가 난다. 상식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평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미 교원평가제 이전에도 근태와 근무관리, 교육 등으로 교사 평가는 충분히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질이 아닌 양의 싸움일 뿐이다. 교원평가제가 구조조정의 도구와 노동자를 억압하는 하나의 족쇄로 이용될 것이고, 교원노조를 목표로 하는 충분한 탄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동의한다. 당장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진다”는 교육감도 당선되는 마당에, 교사의 안정적인 직위를 위협하는 도구는 곧 노동조합 와해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공포는 사실 매우 현실적인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가 먼저 혁신의 깃발을 들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 스스로 청소년 운동을 도우면서 ‘왜 전교조가 움직이지 않지?’ 하는 수많은 물음표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려야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금속노조 다음 가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노동조합인 전교조의 몫이다. 전교조 자체적으로 교원평가제를 진행하고, 일정 점수 이하의 교사들에게 조합원 교육 등을 통해서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다들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교원평가제는 돈이 들고, 시도 자체로도 구성원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의 내부 역량 강화를 위해서만 활용된다면, 조직 내에서의 저항도 적을 것이라고 예측해본다. 노동조합에서 주관하는 교원평가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정말 궁금하다. 교사들이 다른 교사의 수업을 듣고, 여러 가지 항목을 체크하고, 관계 전문가와 타분야 전문가들의 의견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하게 역량 강화만을 위한 교원평가이기에 학생의 의견 역시 충분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모은 의견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재정리되고, 개선사항을 지적하고 핵심 역량을 발굴한다면 충분히 조직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러한 시도 역시도 참교육에 기여를 하는 부분 아닐까? 물론 비용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도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사집단의 폐쇄성을 이렇게라도 깨어나가지 않으면 전교조는 ‘귀족 노조’라는 욕을 계속 먹을 수밖에 없다. 전교조 운동이 순수한 교원노조 운동이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전교조 로고에서도 나와 있듯 가장 중요한 부분은 1989년부터 지금까지 오직 ‘참교육’이었다. 전교조는 끊임없이 잘못된 인식과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워 왔지만, 결국 그렇게 편견을 일삼는 사람들에게조차 동의를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과연 교육의 미래는 있는가? 이태우 한국사회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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