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2002년 사후심의도 위헌 판정받았지만정보통신망법 문구만 약간 고쳐 개정해
심의위 ‘다음 게시물 삭제’ 잣대로 삼아
경찰청장 남용 사례 위헌인 이유 보여줘 최근 어청수 청장 동생의 성매매 업소 투자에 관한 <부산문화방송> 보도 내용이 동영상으로 유튜브에 오르자 경찰청 쪽에서 명예훼손이라며 유튜브 소유자인 구글 쪽에 임시차단 조처를 요구했다. 결국 중국 공안이 특정 외국 사이트들을 자국민만이 보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을 보며 경악했던 우리 국민들은 국가의 후진성을 대표하는 바로 그 메시지 “회원님의 국가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를 보아야 했다. 특히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문화방송>과 <한국방송>의 광우병 관련 방송 내용 및 ‘다음’ 카페의 소비자운동 게시물에 제재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심의제도 자체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라서 더욱 걱정스럽다. 경찰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와 같이 표현의 자유에 개입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사전검열’이며 위헌이다. 사전검열은 행정기관에 의무적으로 표현물을 사전에 제출하여 위법성을 판단받도록 하는 제도이며 대부분의 국가의 헌법에서 절대적으로 금기시된다. 사전검열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자기검열 때문이다. 즉 국민들이 정부에 비판적인 표현물까지 일일이 사전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합법적인 비판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행정기관의 개입은 형식적으로 사후심의라 할지라도 사전검열과 똑같은 결과를 낳는다. 행정기관의 판단은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번복될 수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잠정적이다. 보통 행정기관의 사후심의제도 아래서는 행정기관의 위법성 판단에 불복할 경우 별도의 행정제재가 가해진다. 추후에 사법부에 의해 표현물이 합법적인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합법적인 표현물이라 할지라도 행정기관의 잠정적 판단이 올바르게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두려워 그 표출 자체를 꺼리게 된다. 결국 국민은 행정기관의 눈치를 보게 되며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국민이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는 사법기관의 눈치를 보는 것은 용납할 수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법부의 판단은 최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정기관은 권력자의 영향력 아래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상 권력자의 합법적인 통제 아래 있는데 이들 행정기관의 눈치를 보는 것은 위헌적인 상황이다. 이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후심의라 할지라도 행정기관의 사후심의에 대해서는 대부분 위헌으로 판단하거나 조금이라도 모호한 기준을 이용하면 위헌 처분이 되는 것이다. (표현이 아닌 행위를 행정기관이 사후심의하여 제재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행위는 일방적이며 폭력적이다. 표현은 그 효과가 듣는 사람의 지적인 반응을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점에서 일방적이지 않고 폭력적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에 대해서는 사전검열이 금지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헌법재판소는 사후심의를 일종의 ‘검열’로 규정하며 위헌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당시 심의기준이었던 ‘불온통신’이 행정기관에 맡기기에는 너무 애매모호하며 더욱이 인터넷사업자에게 같은 기준으로 이용자들을 감시 및 제재하도록 강요했다는 이유였다. 이번 ‘다음’ 게시물에 대한 심의는 2002년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것과 똑같고, 단지 심의기준만이 또다른 ‘목적’ ‘교사’ ‘방조’ 등의 모호한 문구로 대체됐을 뿐이다. 문화방송과 한국방송에 대해 이루어진 ‘공정성’ 심의도 위헌성이 검토되어야 한다. ‘공정성’은 이미 위헌 결정을 받은 ‘불온통신’보다 더 모호하다. 전파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방송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행정기관의 심의가 자유로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지금은 인터넷·케이블 등 다양한 대안미디어 등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상황이다. 미국은 이미 1980년대에 연방통신위원회의 방송심의 기준에서 ‘공정성’을 삭제하였는데 그 이유를 곱씹어보아야 한다. 역대 정권들이 ‘공정성’이라는 심의기준을 이용해 비판세력을 제압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경찰청이 아무런 기준도 심의도 없이 ‘명예훼손’이라는 책임지지 못할 주장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차단시킨 것이 위헌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경찰청장 개인에게 쏟아질 비판을 막기 위해 경찰청이라는 공공기관의 이름과 자원이 남용된 정황을 볼 때 우리는 행정기관에 의한 심의는 사후심의라도 위헌인 이유를 다시 되새길 수 있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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