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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7 17:52 수정 : 2005.04.27 17:52

친구들의 거처를 알려주면 강제추방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유혹과 위협 앞에서, 힘없는 불법 체류자는 결국 자신의 양심과 인간성을 포기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최근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 당국의 단속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2004년 말 현재 18만명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가올 8월31일까지 몰아내겠다는 목표 아래 법무부 출입국 직원들로 구성된 단속반이 공장지대를 뒤지며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폭행과 가스총을 동반한 단속이 계속되어 인권침해 시비가 이어지고, 단속반을 피해 달아나다 건물에서 뛰어내린 이들이 다리를 크게 다치는 등 단속을 피하기 위해 목숨마저 내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3월에는 임금을 받지 못한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가 노동사무소와 의정부 지방검찰청을 방문하여 결국 임금을 받게 되었으나, 임금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수갑이 채워져 단속반에게 끌려간 일이 있었다. 인권 피해를 당해 마지막 도움을 요청하며 권리보호 기관을 찾은 이들을 단속하도록 한 정부정책 입안자들의 발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인권 피해를 보는 이주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를 당해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수갑을 채워 잡아가는 방식으로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겠다면, 정부는 지금의 허술하기만 한 외국인 인권보호 정책을 아예 전부 포기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웃나라 일본조차 불법 체류자라 하더라도 인권피해를 당한 외국인에 대해서는 해당 관공서에서 단속을 맡은 부서에 그의 신상과 소재를 통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의 기본적인 인권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법무부는 이주 노동자들이 도움을 청하고자 방문하는 곳에 단속반이 거미줄을 치도록 두고 있다.

법무부의 빗나간 정책은 최근 들어 또다른 사례를 통해 확인되었다. 길거리에서 불법 체류자 한 명을 잡게 되면 그에게 “너는 풀어줄테니 동료들이 있는 곳을 말하라”고 하여 싹쓸이식 단속을 하는 새로운 형태의 ‘단속기법’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 4월 중순,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 ㄴ아무개가 군포 부근에서 단속반에 잡혔을 때, 단속반은 그에게 거래를 제안하였다고 한다. 동료들 20명을 잡도록 ‘협조’해주면 한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풀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단속반의 제안을 따라 동료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이를 통해 18명이 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밀고로 인해 잡힌 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금 당사자는 살해위협 속에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며 “이제는 한국에서 돈을 더 벌어도 무서워서 고향에 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기관인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그가 한국에서 불법 체류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여자친구와 함께 귀국할 수 있도록 자진귀국 프로그램에 따라 풀어준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고맙게 여긴 본인이 단속에 협조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이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현재 법무부는 단 하루라도 합법적 체류기한이 지난 이들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검거하여 추방시키고 있다. 그런데 체류기한이 몇 달 안 된다는 이유로 이미 단속된 불법 체류자를 풀어주었다면 이는 공무원이 직무유기 행위를 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자진귀국 프로그램을 통해 고국에 가는 이들은 출국 두세 시간 전에 공항 안에 있는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항공권을 제시하며 귀국의사를 밝힐 때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곧, 단속에 잡힌 이들에게는 자진귀국 프로그램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항공권을 쥔 노동자조차 단속반에 잡히면 즉시 강제출국되고 있다.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자행되었던 공안기관의 프락치 공작을 기억하고 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인사나 학생들을 잡아내기 위해 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고문이나 협박을 가하여, 결국에는 이들이 친구와 동료를 감시하는 비밀정보원 활동을 하게 했다. 과거의 악몽으로 남아있는 이러한 공권력의 인권유린 행위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단속과정에서 되살아나고 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친구들의 거처를 알려주는 대가로 강제추방을 면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과 위협 앞에서, 힘없는 불법 체류자는 결국 자신의 양심과 인간성을 포기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고 강요한 이가 국가기관이라는 점이다. 사회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이 한 인간의 삶을 파괴시키는 인간성 말살행위이자 비인간적인 폭력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불법체류자 단속이 한창인 상황에서 단속반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런 잔혹한 인권유린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것이 몇몇 단속반원들만 책임질 문제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법무부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외면한 채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는 단속과 강제 추방조처에 대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특히 단속과정에서 각종 인권침해 피해자들에 대한 인도적인 보호책을 세워야 할 것이며, 동료를 밀고하도록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단속은 벌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법무부가 ‘정의’를 실현하는 기관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주기 바란다.


우삼열/외국인이주노동자 대책협의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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