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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7 17:44 수정 : 2005.04.27 17:44

우리가 왜 일본에 분노하고 있는가? 그들이 행했던 과거의 죄과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역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삼양사의 공적이 창업주의 반민족 친일행위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친일 청산, 그 고독한 싸움은 시작되었다. 가로 36㎝, 세로 120㎝의 자그마한 현판을 떼어낸 것을 놓고 전주시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싸움이라면 서로 맞붙어서 치고받는 것이어야 하지만, 적어도 이번 싸움은 일방적인 지역신문들의 공격으로 일관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9일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전주시와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등 10여 곳 시민단체로 구성된 친일잔재 청산 공동연대가 함께 거행한 ‘전주시 친일잔재 청산 선포식’이다. 정확하게는 삼양사 창업자인 김연수의 호를 딴 전주시 종합운동장 정문인 ‘수당문’ 현판을 뗀 것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주장은 매우 단순하다. 그들은 철거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한다. 충분한 여론 수렴이 있어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침묵해 왔다. ‘수당문’ 현판 철거만 해도 이미 3년 전부터 제기되었으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심포지엄도 열었다. 현판 철거는 그 연계선에서 당연히 해야 할 숙제로서 꾸준히 제기되었고 그런 내용도 계속해서 보도해 왔다. 그럼에도 이제야 철거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몇몇 인사들의 언사를 빌려 공격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당히 나서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계속 침묵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좋다.

과거 행적만을 보지 말고 그의 선행을 보라고 한다. 수당문 현판을 떼어버릴 것이면 아예 그가 돈을 댄 종합운동장도 허물어 버리라고 한다. 심지어 아버지가 친일파면 성까지도 바꿀 것이냐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궤변일 뿐이다.

김연수가 누구인가? 그는 동아일보를 세운 김성수의 동생으로 삼양사의 창업자이고, 일제시대 만주국 명예총영사·중추원참의·국민총력조선연맹 후생부장 등을 지내면서 친일활동에 앞장섰던 전형적인 부왜협력자다. 수많은 국방헌금은 물론, “학병에 입대하여 죽을 때 조선이 제국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조선인이 황국신민이 될 때 신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선동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삼양사 공장을 전주에 세우고 지역에 많은 일을 했는데 왜 이것은 알아주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김연수는 그가 행한 숱한 만행에 대해 진심어린 사죄를 한 적이 없다. 민족을 팔아 모은 돈으로 지역에 선심 쓴 ‘애향심’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왜 과거사 청산이 중요한지 그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떻게 하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나라와 겨례에 지은 원죄를 가리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완주 전주시장에게는 친일청산에 ‘영합’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들은 영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영합은 시세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정함으로서 이익을 보려는 것이다. 선포식에 나온 전주시장이 ‘주위의 만류로 고민을 거듭’하면서 행사장에 참석한 것이 영합이었을까? 전주시장의 선택이 정치적인 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그는 처음부터 ‘선포식’ 같은 것을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연수가 지역의 중요한 기업 창업주임을 전주시장이 몰랐을까?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100개 기업을 유치한다고 선언한 상태에서 선포식에 나온 시장의 선택이 친일청산에 영합한 정치적 행위라고 한다면, 전주시장을 뺀 자치단체장 233인은 우둔하다는 것인가? 친일잔재 청산에 연대를 구성한 10여개 시민단체에는 공개적으로 토론회 제안 한번도 하지 못하는 일부 세력들이 자본과 언론의 힘으로 친일잔재 청산 노력에 딴죽을 걸어서는 안 된다.

사죄 없는 침묵은 사죄하는 배신보다 낫다. 우리가 왜 일본에 분노하고 있는가? 그들이 행했던 과거의 죄과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일본이 앞으로 ‘사죄’하고 뒤돌아 ‘배신’하는 짓거리에 넌덜머리가 나기 때문이다. 김연수 현판은 과연 친일의 잔재가 아닌가? 지역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삼양사의 공적이 창업주의 반민족 친일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애써 외면했던 일이 눈앞에 일어나자 불난 호떡집처럼 들썩거리지 말고 올바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시대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친일잔재 선포식의 평가는 후손들의 몫이다. 이제 궤변과 뒤통수 치기를 그만두고 시대의 뜨거운 피를 느껴야 할 것이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한일관계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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