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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10 19:03 수정 : 2008.07.10 19:03

왜냐면

철도노조 밤11시에 천막 철거하라는 통보
농성장 격려 방문커녕 야속한 요구
연대와 단결해야할 한국 민주노조 운동이
이토록 타락할 수 있는가
철도노조에서 나를 제명하라

지난 4일 밤 철도노조가 서울역에 있는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천막을 철거하라고 요청했다. 다음날 예정된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공동투쟁본부’ 발대식이 있으니 잠깐 철거하자는 것이다. 이유인즉 집회 장소가 좁다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케이티엑스·새마을호 승무원 천막이 드넓은 장소를 독차지한 것도 아니다. 천막 두 동을 쳤으니 기껏해야 20여 평, 이 정도 면적을 가지고 집회에 방해가 되니 철거를 하라고? 서울역 치안을 관리하는 남대문 경찰서도, 실질적 사용자인 철도공사도 이런 식의 요구를 한 일이 없다. 그런데 케이티엑스·새마을호 승무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철도노조가 승무원들 투쟁의 상징인 천막을 철거하라니, 이런 일이 노동운동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일과 시간도 아닌 밤 11시에 천막을 철거하라는 요구를 들으며 할 말이 없다.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외주위탁 노동자들이다. 2004년 케이티엑스 개통을 앞두고 2003년 4월20일, 철도노조와 당시 철도청이 정규직 3500명을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부족 인력과 케이티엑스 개통에 필요한 인력, 수원-천안간 전철 개통에 필요한 인력에 대해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철도청은 합의사항을 위반하여 1000여명만 채용하였고 이에 따라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모두 외주위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이들이 그동안 겪은 고초는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누구나 최소 다섯 차례의 공권력 투입과 연행을 겪어야 했다.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 정리해고 및 계약해지,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서 당하는 온갖 탄압을 잇따라 겪어야 했다. 이들의 생활이란 어떠했는가? 20대 여성노동자들이 풍찬노숙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3년 가까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노동조합 회의실이나 사무실에서 사실상 노숙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다. 시멘트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거나 노천 천막에서 소음과 먼지, 그리고 승무원 투쟁을 납득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매일처럼 시달렸다. 그러다가 다치고 병들어서 떠난 승무원들이 수십명에 이른다.

이들을 보듬어 줄 사람들은 동료 노동자들밖에 없다. 민주노조를 자처하는 철도노동조합이 이들을 감싸고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노동조합이 산다. 노동운동의 조직논리가 ‘연대와 단결’이 아닌가? 그런데도 왜 이들을 보호하고 감싸야 할 노동조합이 어렵게 친 천막을 철거하라고 강요해야 하는가? 그것도 일과 시간이 아닌 밤 11시가 넘어서 승무원들이 피로에 지친 몸을 누일 때 전화를 걸어서 철거하라고, “잠깐 철거하면 되는데 그것을 못 하겠다고 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위협해야 하는가? 승무원들이 마지막 투쟁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정세에 맞지 않는다”며 납득할 수 없는 핑계를 대며 정작 한 명도 천막설치에 나오지도 않았다. 그 누구도 천막농성장에 격려 방문을 한 사실도 없다. 한국 사회 민주노조 운동이 이토록 타락할 수 있는지, 민주노조 운동에 회의를 가진다.

나는 이 모든 현실이 노동운동을 하는 간부와 활동가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실 철도 노동자들은 케이티엑스·새마을호 승무원 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해 왔다. 노동조합 설문조사에서 과반수가 넘는 조합원들이 “케이티엑스·새마을호 승무원 투쟁은 정당하며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케이티엑스·새마을호 승무원 투쟁에서 철도 노동자들은 8000여명이 자동이체나 모금을 통해 생계비를 지원해 왔다.

케이티엑스·새마을호 승무원들의 문제는 철도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조를 자처하는 많은 노동조합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기를 사실상 기피한다. 말로는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지만 대부분 노동조합들이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을 현실이라고 판단한다. 민주노조 운동 안에서 철도노조는 그래도 조금 낫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나는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 철도노조에는 세 가지 노동자 집단이 있는 것 같다. 성골인 정규직 노동자들, 진골인 직접고용 비정규직, 천골인 외주위탁 노동자들 …. 같은 철도에서 노동하고,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면서도 노동자들끼리 이렇게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천대해야 하겠는가?


나는 철도노조가 나를 제명하기를 원한다. ‘철도노조는 그런 노조가 아니’라고, ‘너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일삼았다. 철도노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위해 앞장섰다. 철도노조는 케이티엑스·새마을호 승무원들 천막을 철거하라고 강요한 사실이 없다.’ 이렇게 주장하며 나를 제명한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반성하겠다. 노동조합과 철도노동자들을 모욕한 죄를 새기며 평생 반성하며 살 것이다. 그러니 철도노조여, 나를 제명하라.

이철의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비정규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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