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내용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연초부터 곡물가격이 급등해 서민들의 식생활과 먹을거리 환경이 악화된 가운데, 또 국내 여러 지역에서 조류독감이 문제가 되어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진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정부의 협상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앞서 불과 며칠 만에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정책을 180도 바꾸어 미국의 요구를 전격 수용했다. 놀랍게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조건보다 훨씬 불리한 수입조건을 받아들였다. 이번 쇠고기 협상으로 미국한테는 칭찬을 받았겠지만, 다른 나라들에는 나쁜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비난받을 일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광우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국의 쇠고기에 대해 그렇게 쉽게 정책을 바꾸고, 이리저리 둘러대는 궁색한 변명을 하는 행사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쇠고기 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 스스로 식량주권과 국민의 식량권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자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국민들을 좀더 설득하고, 시간이 지나면 이 문제도 가라앉을 것으로 안이하게 보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식량권을 식량의 적절성, 접근성, 지속 가능성 등의 세 측면으로 구분해 규정하고, 세 가지 각각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식량의 적절성은 영양과 안전에 적합해야 할 뿐 아니라, 문화적인 기준이나 선호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량 접근성도 물리적·경제적인 기준의 충족 이외에 존엄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식량의 지속 가능성도 생태적·경제적 기준 이외에 사회적 기준이 함께 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식량권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헌법 제34조 ①항의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규정에서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1966년에 제안돼 76년 발효되면서 식량권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유엔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권리에 대한 국제 규약” 11조 1, 2항에 90년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인 약속을 통해 간접적으로 국민의 식량권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법적으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국가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을 맡는 것이므로 국가의 할 일은 국민의 식량권을 보장하고 그것을 누리도록 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국민 식량권과 관련해 국가는 세 가지 의무를 진다. 첫째는 ‘존중’이다. 국가가 식량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보호’다. 국가는 국민의 식량 접근권이 제3자에게 박탈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충족’이다. 국가는 개인이 적절한 식량 취득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주며, 식량 취득이 어려운 사람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량권에 대한 국가의 이러한 의무와 관련시켜 봤을 때 이번 미국산 정부의 쇠고기 수입 결정은 국가 스스로 의무를 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 식량권에 대한 존중도 없었고, 보호도 없었고,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도 없었다.새 정부의 국정 모토가 국민을 섬기는 정부인데, 국민에게 가장 기본적인 식량권을 무시하면서 그것이 국민을 섬기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 식량권을 앞장서 어긴 정부가 식량권을 어기거나 위협하는 기업들을 어떻게 규제하고, 이를 바로잡아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에 그치지 않고,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식용으로 수입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한다. 이 문제도 결국 국민의 식량권과 관련된 문제이고, 정부가 국민의 식량권을 무시하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계속해서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들의 식량권을 무시한다면, 국민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식량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고, 우리의 생명과 생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또 식량권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며, 인권은 국가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먹거리와 관련된 정책을 펴면서 기본적으로 식량권을 전제해야 한다. 국민들도 식량권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고 대응해야 한다. 국민들은 정부가 식량권을 존중·보호·충족하도록 감시하고 독려해야 한다. 이번 먹거리 파동이 국민의 식량권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종덕 경남대 교수·농업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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