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국선변호를 하다보니 범죄사기단에 꼬여 자기도 모르게 보이스피싱에 가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본다. 착실했던 한 청년이 한순간의 유혹에 흔들려 징역살이를 하는 걸 보니 안타깝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안산에서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하다 보니 전화사기(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외국인들을 위해 변론할 기회가 많고,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언론에서는 전화사기범들의 고도화된 수법, 그리고 전화사기범들에게 속아 피해를 본 분들의 억울한 사연들만 앞다퉈 다루지만 이러한 범행에 가담하게 되는 외국인들에 대해선 잘 주목하지 않는다. 전화사기 범죄조직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재중동포 등을 암암리에 모집하고 있다. 그들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전화 사기단이 “현금카드로 돈을 인출하면 일당으로 돈을 주겠다. 그 돈은 중국에서 넘어 온 정치자금 등 검은돈이다”라는 식으로 접근해 현금카드로 현금을 인출하거나 계좌이체(범행에 사용하는 통장이 정상적으로 입·출금이 가능한지 테스트하기 위함)할 것을 제안한다. 이런 제안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돈을 버는 것이 급급한 나머지 그들의 제안에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음을 인식하지만 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기범행의 한 몫을 맡게 된다. 가담 경위가 어찌되었든 전화사기 범죄조직의 부탁을 받고 현금인출 등을 해주는 경우 설사 전화사기로 말미암은 것임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현행법상 전화사기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대부분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아 구속돼 전화사기의 공동정범으로 기소되고 있다. 전화사기에 가담했음을 알지 못하고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기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하는 것은 법리상 옳지 않다는 취지로 무죄변론을 하고 있으나, 현재 법원은 그들을 사기죄의 공동정범으로 실형 1년 이상의 엄벌을 선고하고 있다. 전화사기 범행을 근절하고자 법원이 내리는 불가피한 결정으로 이해된다. 국선변호인으로서 내가 만난 형사 피고인 중 한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19살의 중국인으로, 중국에서 부모님의 도움으로 큰 목돈을 들여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 유학온 학생이다. 3학기를 다니다가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안산으로 와 일용직 일을 하던 중 사기범행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다. 판사는 그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인지 이례적으로 전화사기로 피해를 본 분을 법정에 불렀고, 농부인 피해자 앞에서 피고인은 어눌한 한국어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제 부모님도 농부입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기범행에 가담하는 외국인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위에서 소개한 형사 피고인도 결국 전화 사기범행의 또다른 피해자임을 알리고 싶었고, 또다른 외국인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범행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화사기 범죄조직으로부터 이러한 제안을 받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그들 행동이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고 있는지, 그리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얼마나 중하게 처벌되는지에 대해 알리고 싶다.최정규 대한법률구조공단 안산출장소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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