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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24 21:12 수정 : 2008.05.29 16:55

왜냐면

빛나리·마빡이·대머리 등은 끈질기게 탈모 남성들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또 영화나 드라마·만화 속에서 탈모 남성들은 우스꽝스럽거나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렇게 탈모 남성들의 이미지가 희화되다 보니,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탈모도 하나의 질환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세계 최초로 먹는 탈모증 약이 나왔을 때는 어떠했나. ‘해피 드러그’(Happy drug), 곧 삶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약으로 지칭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접하는 탈모증만으로는 장애까지 확장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탈모도 엄연한 피부과 질환의 하나로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증상이나 정도에 따라서 삶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탈모 증상은 원형탈모증과 전신 전두탈모증.

중증 원형탈모증은 동전만한 크기가 아닌, 손바닥 혹은 그 이상의 크기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탈모가 일어난 두피에 상처가 아문 후의 흉터처럼 생긴 반흔 증상이 나타난다. 게다가 한 곳이 아니라 크고 작은 탈모증이 머리 곳곳에 나타나기도 한다. 진료실을 찾은 한 중증 원형탈모증 환자는 가발이 없으면 흉한 모습 때문에 외부 출입 자체를 못하고 있으며, 자신조차도 모습이 흉측해 거울을 보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당연히 취업이나 대인관계에 지장이 생기고, 미혼 환자라면 결혼에 따르는 장애도 피할 수 없다. 보통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전두탈모가 아니더라도 탈모증이 25% 이상을 넘어서면 가발 착용을 피할 수 없다. 이를 기준으로 삼을 때 가발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중증 원형탈모증은 대략 1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전두 전신탈모증 환자는 병명의 느낌처럼 온몸의 털이 다 빠져버리는 증상이다. 흔치 않은 난치성 질환이다. 머리카락은 물론 팔다리의 털, 심지어는 눈썹까지 빠지기도 한다. 털은 보기 좋은 외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할 뿐 아니라,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어막 기능도 크다. 전두 전신탈모증 환자는 털이 빠지면서 파충류처럼 변하는 외모 콤플렉스도 문제지만, 이차적인 외부 자극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이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감과 정신적 고통은 엄청날 정도다.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대략 해마다 이삼백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듯 탈모증으로 기본적인 삶의 질에 타격이 큰 환자들에 대한 국가적인 배려는 있을까? 국가배상법상 추상 장애의 분류와 장애율을 보면 두피에 손바닥 크기 이상의 반흔이 있거나, 모발 3분의 2 이상의 결손이 있으면 60%의 장애율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책적 지원은 거의 없다. 탈모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자체가 어렵고 치료에 대한 희망 자체가 희박하기 때문에 평생을 탈모증과 함께해야 한다. 이들은 분신처럼 가발을 쓰고 다녀야 하는데, 싼 것이 5만원, 값비싼 것이 100만원 이상이다. 대개 30만원 선의 제품이 쓸 만하다고 한다. 한두 번 멋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매일 착용해야 하는 탓에 적어도 1년에 한번씩은 교체를 해줘야 한다. 평생을 반복해야 하므로 제법 큰 비용이 필요하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탈모 환자들을 위해 해마다 300달러를 가발 비용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법 조항에만 명시되어 있는 형식적인 배려가 아닌, 해마다 20만원 정도의 가발 비용 지원이 절실하다. 가발이 있다고 해서 결코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이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하다.

현재 건강보험법에서 의족·의수·의안, 저시력 보조안경, 보청기 등은 다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다. 가발은 다리를 잃은 사람이 착용하는 의족이나 안구를 잃은 사람이 그 자리를 메우는 의안과 마찬가지 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평생 탈모증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가발을 교체해야 하는 경제적 곤란함까지 고려한다면 국가가 해 주는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까.

임철완/전북대병원 피부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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