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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24 21:09 수정 : 2008.04.24 21:09

왜냐면

아래로부터 자치에서 나온걸
위로부터의 학교자율이라는 말로
다 지워버리는 모순의 극치
교과부의 자율화는 교장실의 자율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위해 학교 중심의 자치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그 뜻대로 한다면 학교마다 환영 목소리가 나와야 마땅하다. 하지만 일선 학교는 교과부가 던진 ‘위로부터의 학교 자율’을 받아든 채 다시 위만 쳐다보고 있다.

정책은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제도를 만들어 운용한다. 그 제도가 정책 취지에 부합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 예측하는 능력이 없다면 제도는 ‘망나니의 칼’로 돌변할 수 있다. 교과부의 정책 입안 책임자들은 이번 조처가 학교를 어떻게 뒤흔들지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휘두른 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규제 철폐라는 명분을 입혔다. 그들은 공공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규제를 학교 자치를 해치는 간섭과 뒤섞어 놓았다. 규제에 대한 여론의 일반적 반감을 활용하려다 보니 수년간 축적되어 온 학교 자치의 성과를 ‘전봇대’로 몰아붙이고 있다.

하지만 0교시 수업, 우열반 학급 편성, 사설 모의고사 관련 지침은 학교 구성원들이 여러 해 논쟁 끝에 금지하기로 결정한 학교 자치 구조의 성과물이다. 새벽부터 심야까지 입시 학습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공교육 기관으로서는 체면치레도 안 되는, 미흡한 내용들이었다. 창피스러운 수준일지언정 이런 금지 규정을 유지한 힘은 학교 구성원들의 노력과 사회적 공감에 바탕을 둔 ‘아래로부터의 자치’에서 나왔다.

‘0교시 수업 금지’만 보더라도 중앙정부는 학교 구성원들의 요구와 사회적 여론에 밀려 지침을 제정했다. 학원을 24시간 편의점처럼 운영하겠다는 서울시 조례안이 학생·학부모·교사들의 항의로 없었던 일이 되었듯 학교 현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여론을 당시 교육부가 마지못해 수용했던 것이다. 이번 조처가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몸으로 아는 학생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쏟아 내고 있다. ‘죽고 싶다’, ‘이민가고 싶다’, ‘학교 다니기 싫다’는 댓글은 교과부가 의도하는 ‘다양한 학교 자율’이 몰고 올 현실을 경고한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런 정책이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학교 자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핵심 의제가 가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논의의 방향을 왜곡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학교 리더십 문제부터 거론해야 마땅하다. 교과부의 정책적 목표가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므로 현재의 학교 자치 현실부터 분석해야 일의 앞뒤가 맞아 떨어진다.

교과부가 폐지 방침을 밝히기 전부터 이미 학교 안에서는 사문화된 지침이 많았다는 사실부터 밝혀야 했다. 아침 시간부터 교과학습 중심의 ‘0교시’ 수업을 하는 중학교도 있다.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해 기숙형 학급을 운영하는 고등학교도 있고, 지역 교육청이 나서서 국·영·수 중심 통합 보충수업을 부추기면서 학생 수를 채우라고 독려하기도 한다. 성적순에 따라 좋은 반찬을 주는 학교까지 생겼다. 들여다보면 학교에 자율이 없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게 아니다. 자율 권한이 학교장에게 집중되어 문제가 발생해 왔다.


 그러므로 이대로 갈 경우 학교의 자율권은 교장실 안에서만 넘쳐날 것이다. 교과부가 없앤 지침은 그동안 학교 안에서 ‘신호등’ 구실을 해 왔다. ‘신호등을 뽑아 버린다고 교통 문화가 성숙해지느냐’는 누리꾼의 지적은 통렬하다. ‘신호등’을 ‘전봇대’라고 우기면서 뽑아내면 학교장들은 고속도로 주행속도로 역주행할 가능성이 높다. ‘학교 내부의 자율 통제 기능을 강화해 책무성을 높이겠다’는 교과부의 대책이 ‘과속방지턱’이라도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동안에는 부교재 채택료나 촌지를 거부했던 교사들, 어린이 신문 강제 구독과 비합리적 교복값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섰던 학부모들이 학교 자치에 필요한 기준을 만들어 왔다. 그런 궤적을 지우면서 학교 자율을 이루라고 하니, 정작 자율의 주인이 되어야 할 학교 구성원들은 ‘주어진 자율’을 받지 않고 위를 향해 걷어찰 태세다. 교과부는 학교로 공을 넘겼다고 하지만 그 공이 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끌어안고만 있을 수는 없다.

임병구/전교조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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