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그 사람들이 법을 만드는데 우리는 따라야 하니까.”미국 초등 3년인 딸이 선거를 이해했다. 투표율이 낮은건
학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에 산지 8년이 넘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선거에 큰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작년인가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숙제로 잠시 난감하던 때가 있었다. 주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 출마한 후보자들에 대해서 부모에게 물어보고 어떤 사람들이 나왔는지,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라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숙제는 작문을 빼고는 그럭저럭 해결해 주었지만 이 숙제만은 손도 댈 수가 없었고, 그래서 친한 이웃의 부부에게 아이의 숙제를 부탁했다. 투표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입법, 사법, 행정에 각급 지방정부 단위를 기준으로 분류하더라도 거의 20가지는 족히 되는 복잡한 미국선거를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도대체 미국은 무슨 선거가 그리도 자주 있는지, 앞마당에 자기네는 누구누구를 지지한다는 팻말을 꽂아 놓거나(한국에서는 이랬다간 테러당하기 딱일 거다.) 여럿이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나와 후보들의 이름을 외치는 광경을 자주 보고는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사람들, 아마도 자원봉사자들일 듯 싶은데, 이들의 연령층이 10대로 보이는 아이들부터 60, 70대로 보이는 노인들까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식 선거와 정치제도는 사실 유럽의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낫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선의 경우 간접선거의 대의성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고 낮은 투표율이나 고비용선거 등에 대한 문제가 매번 제기되고는 있지만 특별한 해결책이나 노력 등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상의 문제점이 있기는 해도 일반 국민들의 수준에서 한국에서처럼 정치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거나 그런 불신의 틈으로 부패한 정치인들이 횡행하지는 않는 걸 보면 뒤뚱거리기는 해도 시스템이 완전히 오작동을 일으키지는 않는 모양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젊은층의 선거 무관심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 20대의 투표율이 19%라니, 그런 무관심 속에 펼쳐질 정치는 또 다른 정치혐오증과 정치무관심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런 가운데 만들어질 사회를 그리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딸아이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알지도 못하는 우리동네 시장의 이름을 물었더니, 나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을 얘기한다. 그런 딸에게 또 물었다. 학교에서 왜 그런 데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니, 대통령도 아니고 겨우 시장이 누가 되고 누가 주의회 의원이 되는 거를 왜 알아야 하지? 거창하게 대의정치의 구조에서 그들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 사람들이 법을 만드는데 우리가 따라야 하니까”였다. 세상에, 너는 아빠가 마흔이 다 되어서야 깨달은 것을 벌써 알고 있구나. 어렸을 적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런 수업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때야 지방자치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지만 만약 그런 숙제를 지금 받아온다면 한국의 부모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쓸데없이 아이들을 ‘정치에 오염’ 시킨다고 항의나 하지 않을런지. 나는 이 말이 재미있다. 정치에 오염되다니, 정치가 무슨 공해물질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에 대해 물으면 자신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럼 바꿔서 “우리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어떨까. 정치혐오증이라고 그러는데, 사람들은 청와대와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악다구니와 그들이 벌이는 온갖 부정부패의 동의어로 정치를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생각들은 아마도 이제 겨우 반세기가 넘은 짧은 역사에서 나오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겠으나, 또한 그런 의식들을 초·중등학교 과정에서 소화해주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지. 어려서부터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차근차근히 생활을 통해서 보여주고 체득하도록 했다면 오늘의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여 낮은 투표율의 책임을 온전히 살벌한 신자유주의의 시장에서 생존의 무게조차 버거워하는 20대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기실 솔직히 말하자면 투표율이 그보다는 좀 높다는 우리 기성세대도, 파렴치범이나 다름 없는 사람들을 다시 뽑는 것을 보면, 제대로 정치를 이해하고 투표한다고 장담할 처지는 아닌 듯하다.
김성재/미국 국립 독성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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