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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7 19:05 수정 : 2008.01.07 19:05

왜냐면

보수언론과 정권교체기에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집단과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대학 집단은
어리석음의 잣대로 교육을 예단하지 말고 약팽소선하기를 바란다.

수능 등급제 논란이 뜨겁다. 처음 시행된 제도임에도 이명박 정부에서는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내며 폐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등급제가 매우 불공정하고 입시에서 상대적 억울한 경우와 희생자를 낳고 있다면서 위헌청구와 행정소송을 한다느니,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공개해야 한다느니, 심지어 로또수능으로서 1989년생들의 입시 저주라는 자극적인 언설로 입시제도의 원흉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책의 정당성과 옳고 그름을 합리적으로 따지기보다는 마땅히 폐지해야 할 제도라는 극한적 논리를 경쟁적으로 유포하며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첫째, 보수언론이다. 특히 ‘조·중·동’을 전위로 하는 보수언론은 사교육 업체나 교육의 시장논리를 강조하는 논객들의 견해를 침소봉대하거나 유력한 대안이나 되는 것처럼 공론화하며 등급제 흔들기에 조직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들이 공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속셈은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물적 토대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하려는 것이다. 사교육 업체와 결탁하여 각종 입시용 경시대회를 홍보·주관하거나 입시교재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쟁적 입시교육을 부채질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잇속을 채워 보려는 얄팍한 돈벌이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다양한 교육정보 제공이라지만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적절히 활용·편승하여 구독자를 올리고, 기업형 사교육 업체와의 유착과 이를 통한 교육사업 자회사의 매출 확대를 꿈꾸는 경제적 속셈이 깔려 있다. 또한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물적 토대로 기능하고 있는 보수 기득권층을 안정적으로 확대 재생산하자면 교육을 능가할 만한 사회적 공적 수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정권교체기에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집단이다. 책임 있는 정치권이라면 처음 시행된 제도를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조변석개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모름지기 교육은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교육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흔들릴 때 그것은 이미 교육이 아니다. 정치적 지배이데올로기에 부응하는 체제 순응적이고 충견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될 뿐이다. 등급제는 반올림과 소수점 경쟁까지 해야 했던 맹목적인 점수 중심의 경쟁적 입시 지옥을 완화하고, 학생들에게 수능시험의 부담을 덜어서 대학 선택의 지원 폭을 넓혀주고 합격 가능성마저 높여준다는 점에서 과거 점수제보다 더 교육적이고 진일보한 입시제도다.

셋째,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대학 집단이다. 대학은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수긍할 만한 학생 선발제도를 연구하여 제시한 적이 없다. 대학 서열화에 무임승차하여 학생선발 특혜를 받아오면서 대학의 자율성을 주장했을 뿐 사실상 무사안일과 무책임으로 일관해 왔다. 기업들의 담합과 불공정 행위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학생 선발을 위한 자신들의 짬짜미와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오히려 공교육에서도 시장논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학원을 따라가지 못하는 공교육을 질타하거나 획일적인 문제풀이 입시교육을 개탄하기 일쑤였다.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서 입시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지를 조사하여 논술시험의 출제 방향을 모색하거나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흔들기를 선도해 왔다.

현행 수능 등급제는 결코 후퇴할 수 없는 입시제도다. 수능등급을 더욱 세분화한다거나 과거 점수제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은 점수 경쟁의 치열성과 교육의 획일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차제에 수능시험을 고교졸업 자격고사로 전환하여 대학입시의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학생부와 면접, 논술로 학생을 선발하는 입시제도의 개선이 차선책이지, 과거 회귀는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고전적 명제가 사문화되었다 할지라도 보수언론과 정치권은 더는 대롱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의 잣대로 교육을 예단하지 말고 약팽소선(若烹小鮮)하기를 바란다.

박명섭/전남 곡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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