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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7 19:06 수정 : 2007.12.17 19:06

왜냐면

부패한 사람은 자신에게는
유능한 사람일지 모르나
사회전체적으로 가장 무능한 존재
부패하더라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라는 건 왕정복고의 꿈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나는 이것이 부패가 부패의 이름이 아닌 당당한 권리로 행해지던 왕권국가에서나 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왕은 모든 종류의 권력과 재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부패할 수 없다. 왕의 사적 이익과 나라의 이익은 곧 같은 것이었다. 왕이 곧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도 너무 많은 재화를 소유하고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무능한 왕이 된다.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는 프랑스인들의 분노를 샀고, 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왕권국가에서도 왕과 궁궐의 너무 많은 사치는 지탄받았는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부패한 정치가가 어떻게 능력이 좋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부패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유능한 사람일지 모르나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무능한 존재다.

1997년부터 10년 동안 한국 사회는 군사독재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군사독재 기간에 권력자들의 부패는 사회 곳곳에 깊숙이 내재화되어 있었고, 군사독재 기간이 끝난 이후의 권력자들은 앞 시대 권력자들의 모습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답습하는 행태를 보였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 대한 열망은 강했으나, 박정희식 경제발전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양극화 현상은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골이 깊어졌다.

지난 10년이 무능했다는 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과거 독재정권이 상대적으로 유능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지난 10년이 무능한 이유는 독재정권과 확연한 차별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경제는 무능에도 불구하고 수백만의 실업자들이 빵집을 습격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인들은 아무런 혼란 없는 사회를 갈망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노예처럼 부려줄 전제군주를 꿈꾼다. 한국 사회에서 부패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은 왕정복고를 꿈꾸는 것과 같다.

혁명프랑스는 열망만 충만했을 뿐, 새로운 사회체에 대한 불안과 주변국들의 압력에 힘들어했다. 그때 젊은 장군이 출현해 이탈리아 전선에서 연승을 거두기 시작한다. 이 장군의 출현으로 혁명프랑스는 방어전에서 공세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업적으로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가 바로 나폴레옹이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다시 부르봉왕가로 왕정복고가 이루어진다.

혁명프랑스가 지향한 것은 단순히 강력한 프랑스가 아니라, 자유로운 프랑스였다. 그렇지만 혼란에 대처하는 프랑스인들의 자세가 침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프랑스는 왕정복고가 되는 시련을 다시 겪어야 했다. 하나의 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데는 제도의 정비, 법의 정비 이외에도 사회 구성원들이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법과 제도의 정비처럼 가시적이지 않고, 시간도 훨씬 더 많이 걸린다. 그러나 자유인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고 역사를 뒤로 되돌리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다 같이 비루한 개가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지고 자신의 자유를 헌납하지는 말자. 혼란에서 오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면 영원한 고통 속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다. 부패는 왕에게나 가능한 권리다.

강경필/전남대 철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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