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1점 차이로 등급이 나눠서 불공정하다는데급간의 경계는 평가가 존재하는 한 불가피
전체적으로 본다면 지원가능 대학 확대
지원상 혼란은 제도변경으로 빚어진 과도기적 현상
집안은 조용한데 밖에서 불났다고 하는 형국
비판의 초점은 내신 무력화한 대학에 겨눠야 한다 요즈음 일부 언론의 기사를 보면 대학입시 현장에서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다. 아니 큰일이 났다. 수능 등급제로 인한 혼란으로 수험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까지 ‘반쯤 미치게’ 한단다. 여기에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입시제도에 대해 “이 제도는 실패한 것 같다”는 예단까지 한다. 집안은 조용한데, 밖에서는 불이 났다고 난리다. 이 정도에 이르면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상황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수능 등급제와 관련된 논란은 대략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수능 등급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영역별 시험성적의 분포에 따라 총점이 높아도 1점 차이로 등급이 낮아지는 경우가 발생하여 공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등급제는 성적을 단순히 점수 순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성취 수준을 상대평가에 의해 급간으로 나타낸다. 따라서 등급제에서 동일 급간은 동일한 성취 수준을 나타낸다. 예컨대 수능 92점이 1등급의 하한선이 된다면 92점과 100점을 동일한 성취 수준으로 판정하는 것이다. 91점은 1점 차이지만 상위 4%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이므로 동일 성취 수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급간의 경계는 평가가 존재하는 한 불가피하고,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현행 등급제는 수능과 똑같이 내신에도 적용되고 있으며, 이전의 대입 전형에서도 이미 부분적으로 시행되어 응시 자격이나 최저학력 기준으로 활용돼 왔다. 이 경우에도 1점은 1등급과 2등급, 합격과 불합격을 좌우하는 점수가 된다. 수능 점수가 등급의 경계선상에 있다면 개인에 따라 다소 유·불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등급제로 인해 성적 범위가 확대되어 지원 가능한 인원과 점수의 폭이 넓어진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특정 상위권 대학을 상위 6% 안에 드는 학생만 지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현행 제도에서는 11%(2등급) 안에 드는 학생들까지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대학은 더욱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을 광범위하게 선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지원 가능한 폭이 넓어짐에 따라 등급제의 변별력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우려하여 일부 대학은 2007학년도 입학생을 대상으로 등급제 선발 모의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등급제로 학생을 선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대학 당국자는 밝히고 있다. 이 대학 당국자는 표준점수 0.1점으로 당락이 좌우되는 이전의 제도와 비교할 때 오히려 현행 등급제가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견해를 교사 초청 입시간담회에서 밝힌 바도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수능 등급제 논란은 아무런 교육적 근거도 없이 의도적으로 왜곡·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지원상의 혼란 문제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수험생들이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가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지, 제도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각종 입시정보 기관이나, 각 지방 교육청 단위의 대입 지원단들은 가채점을 근거로 대학별 예상 배치표를 이미 내놓고 있다. 그동안의 입시 전형에서 축적된 대학별·학과별 선호도와 수능 성적 누적분포표를 바탕으로 등급별 평균을 환산해 배치한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영역별 등급 조합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한 것은 등급별 누적분포도를 통해 수험생의 수능 성적 위치를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입시 정보가 제공된다면 수험생은 자기 수준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진학 지도교사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제도에 따른 다소의 혼란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부 언론이 걱정(?)하는 것처럼 감당할 수 없는 ‘반쯤 미치게’ 하는 혼란이냐는 것이다. 날선 비판의 초점은 다른 곳이어야 한다. 그곳은 내신 반영률 확대와 수능 영향력 완화를 통해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하고자 한 2008학년도 대입제도를 희화화한 대학이어야 한다. 내신의 실질 반영률을 높이라는 교육부 당국의 촉구에 자신의 대학 수준에서는 지원조차 할 수 없는 하위 등급의 급간 점수차를 벌리고, 상위 등급의 급간 점수차는 거의 두지 않음으로써 내신을 무력화한 행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학들의 이런 행태로 말미암아 교사들은 새로운 입시용어를 만들어야 한다. ‘외형 반영률’과 ‘실질 반영률’이라는 기존의 용어에 더해 이제 ‘실제 반영률’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야 할 처지다. 입시 혼란을 부추기는 일부 언론에 묻고 싶다. 거의 사술(詐術)에 가까운 대학의 행태에는 한마디 비판도 없으면서, 어찌 입시제도에 대해서는 왜곡과 과장을 일삼느냐고. 조성국/서울 도봉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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