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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0 17:35 수정 : 2005.04.10 17:35

재반론-홍성안씨의 ‘수소경제는 있다’를 읽고

수소는 우리가 재생 가능 에너지를 풍부하게 이용할 수 있을 때가 되어야 그 부산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전에는 수입한 천연가스를 분해하여 얻는 것이므로 수소는 화석연료이다. 수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려면 그 구실이 부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1일은 에너지대안센터의 시민태양발전소 1호가 드디어 전기 판매를 시작한 역사적인 날이다. 소규모 분산적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전력을 거래할 수 있게 되어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의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그러나 35명의 출자자 중 한사람으로서 나는 요즘, 에너지대안센터가 2년 동안 어렵게 노력하여 판매를 성사시킨 소중한 재생가능에너지 전기를 수소로 전부 바꾸어 쓰자는 말이 무척 언짢다. 그동안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주류’의 반응은 재생가능에너지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적은 양에 대한 냉소였다. 그런데 그 ‘적은’ 양의 에너지조차 전부 수소로 바꾸어 쓰자고 하니 그들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가 낯설기만 하다.

수소는 에너지 공급원이 아니라 에너지 운반체라는 상식적인 사실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가? 해와 바람에서 얻어지는 재생가능에너지는 생산된 곳 가까이에서 바로 쓰고, 남는 게 있다면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 열과 전기로 바꾸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수소는 우리가 재생가능에너지를 풍부하게 이용할 수 있을 때가 되어야 그 부산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전에는 수입한 천연가스를 분해하여 얻는 것이므로 수소는 화석연료이다. 수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려면 그 역할이 부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소경제 예찬론자들은 기존 중앙집중식 거대 에너지시스템을 고수하다 보니, 결국 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안전성과 환경성이 ‘월등히’ 좋다는 제4세대 원자로로 수소를 만들겠다고 얘기한다. 이 새로운 핵기술은 2025년 이후에나 상용화될 것이라는데 얼마나 믿을 만한지 알 수 없다. 다만 한국이 개발하고 있는 액체금속로 칼리머가 새로운 원자로의 한 모델이 된다는데, 상온에서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나트륨 금속을 녹여서 감속재로 사용한다는 단순한 사실만 봐도 핵기술 아이디어가 근본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은 셈이다. 또한 95년 일본의 몬주 나트륨 누출 사고와 같은 위험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지금 핵에너지는 세계 1차 에너지의 6%(BP 2004년 통계)를 차지하고 있는데, 현재의 기술과 소비량을 기준으로 우라늄 매장량은 40년밖에 쓸 수 없다는 한계를 피하기 어렵다. 원자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차세대’ 핵기술의 ‘차세대’ 실험장소가 될 지 모른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어떤 핵기술도, 인간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는 인간의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하고 거대하고 완벽한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핵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단순히 연료만 수소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분산된 지역 에너지 시스템에 맞는 사회·경제상을 새롭게 그려보는 상상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당장 건물의 단열을 두텁게 하고, 불필요한 교통과 운송을 줄여나가고, 과거처럼 실패하지 않도록 숙련을 통해 태양열 설비의 세세한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세계적으로는 이미 주류 전력원이 된 풍력에 현재의 전기·전자·재료·항공 기술 역량을, 태양광 발전에 우리의 앞선 반도체 기술 역량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석유생산정점연구협회(ASPO)가 2007년으로 예상하는 석유생산정점(피크오일)이 임박하고, 이산화탄소 배출 세계 9위인 우리나라가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적 책임을 져야하는 시급한 이 시점에 우리는 이미 가능한 기술적·정책적 역량을 모아 분산된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의 평화로운 에너지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한다. ‘수소’로 혼돈스러운 이들은 지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에너지 다소비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수소경제’는 시급히 선언되어야 할 ‘태양경제’의 일부분일 뿐이다.


허진혁/녹색평론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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