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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01 18:34 수정 : 2007.11.01 18:37

왜냐면

반론 / ‘논술교육, 공교육에서도 책임지라’

지금 대학 논술시험의 문제점은
논술의 본질을 왜곡하며
공교육을 무책임하게 흔드는 것
토론과 논술수업 가능토록
교과과정 개선해야

‘논술교육, 공교육에서도 책임지라’는 홍경희씨의 주장(〈한겨레〉 10월16일치 ‘왜냐면’)에 반론한다. 홍경희씨는 학생들의 교육의 질을 고민하는 교육자라면 논술시험을 바꾸라는 정체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논술유형의 발전적 개선을 요구해야 하고, 공교육도 객관식 주입교육에서 창의교육으로 질적 변화를 꾀하려면 논술 사교육 시장을 비판하기에 앞서 적극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씀이다. 게다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예로 들어 논술시험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철학적 사유 능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하는 것인 만큼 공교육에서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홍경희씨의 주장은 현행 논술시험과 공교육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사교육 시장의 논술교육을 정당화하려는 논술 사교육 이해집단의 입장을 반영한 주관적 단견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현행 논술시험은, 그 명분이 학생들의 창의력이나 철학적 사유 능력의 계발이든 다각적이고 논리적인 표현 능력 함양을 위한 글쓰기든, 논술의 본질을 왜곡하며 공교육을 무책임하게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논술시험을 통해 대학이 노리는 목적은 피라미드처럼 위계화된 대학의 서열체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속셈이다.

즉 그럴싸한 명분을 앞세워 성적 우수 학생을 다른 대학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방편에서 도입한 혹세무민의 집단적 이기주의적 입시이데올로기라는 점이다. 대학은 정부를 향해 대학의 자율성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들은 고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침해하며 공교육을 심하게 흔들고 있다. 공교육이 논술을 비판하는 근본 이유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은 논술이 공교육의 자율성을 훼손하든, 어떤 형태의 논술 유형으로 바뀌든 논술시험의 폐지나 비판을 말할 수 없다. 이윤 추구라는 사교육 시장의 목적과 자신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가당착적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학력고사가 수능으로 전환된 것과 지금 논술시험이 도입된 것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학력고사는 사회적 동의와 합의를 거쳐 제도로 시행된 것이었지만 논술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동의와 합의는커녕 대학의 일방적 요구에 따라 진행되다 보니 공교육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고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 논술은 한국과는 그 본질과 목적이 전혀 다른 시험제도다. 프랑스와 독일의 논술은 학생들이 고교 교육과정을 통해 토론식 논술수업으로 충분히 배운 다음 수차례에 걸쳐 평가를 받는다. 논술시험의 출제도 학생들을 직접 가르친 고교 교사들이 공동 출제하기 때문에 논술 광풍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고교 때 전혀 배우지도 않은 것을, 그것도 대학교수들이 동서양의 고전에서 지문을 발췌하여 대학마다 천차만별의 시험유형을 출제한다.

나는 홍경희씨의 주장처럼 공교육이 객관식 주입교육에서 탈피하여 창의성과 철학적 사유 능력을 계발하는 토론식 논술수업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이것은 국가의 교육정책을 바꾸는 큰 틀의 문제다. 따라서 나는 논술은 글쓰기지만 글쓰기는 논술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현행 논술시험의 중단을 전제로 제안한다.


첫째 자연계 학생에겐 인문학적 상상력이, 인문사회계 학생에겐 과학적 지식과 사유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수리논술, 과학논술, 인문논술로 세분화된 것을 일반 논술로 통합해야 하고, 둘째 대학마다 천차만별인 논술 유형을 즉각 폐기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나, 전국 단위 고교 교사 혹은 고교 교사와 대학교수 공동위원회에서 시험을 출제해야 하고, 셋째 토론과 논술수업이 교육과정 내에서 일상적으로 가능하도록 교육과정과 교육평가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이다.

박명섭 전남 곡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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