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반론 / 애물 ‘운하’ 말고 보물 ‘해저터널’을 제주의 자산은 ‘섬’의 가치관광객 창출은 터널관광객일 뿐
자동차 흘러들어오면 매력도 쇠퇴
산업단지도 성공 가능성 전무
땅값만 올려 ‘보물’ 아니라 ‘눈물’ 될 것 지난 9월 전라남도와 제주도 지사가 완도와 제주 사이 해저터널을 뚫자는 공동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고, 20조원 안팎의 예상 공사비까지 제시했다. 터널 건설의 효과는 관광객 유치와 물류라는 두 가지 명분인데, 관광이 제1의 산업인 제주도로서는 절대적으로 득이 될 것이 없는 예산낭비요 환경재앙이 될 것이다. 제주터널은 한~일 해저터널과 더불어 농담 삼아 가끔 거론되었던 해묵은 이야기다. 김국 교수의 ‘애물 ‘운하’ 말고 보물 ‘해저터널’을’(<한겨레> 10월19일치 33면)이라는 글을 읽고 이대로 여론을 방치하다가는 ‘토목선수’들에게 휘말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해양관광의 클러스터, 산업단지, 물류, 군사적 유용성까지 거론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게다가 완도노선보다 길더라도 여수노선으로 해야 한반도에서의 접근성이 좋고 기존 철도와 연결할 수 있다는 말로 관련 지역과 분야를 불러들일 태세다. 제주의 가치는 ‘섬’이라는 데 있다. 중앙 문화에 대한 객체로서의 보수성이라거나 타지역에 비해 짙게 남아 있는 지역성과 함께 환경적으로 청정성이 제주의 주요한 자산이다. 여기에 접근 방법의 차별성 또한 제주를 제주이게 하는 결정적 요소다. 즉 섬으로서의 제주는 배를 타고 오거나 비행기를 타고 와야 제맛인 것이다. 현재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500만명 선에서 정체되어 있다. 터널을 통해 1천만 관광객을 달성하겠다는 발상은 마치 교통수단이 부족해 관광객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생각인 것 같다. 터널로 관광객을 창출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터널관광객’일 뿐이다. 한 비행기로 250명이 오는 대신 승용차 80여대가 오게 되고, 500여명이 탄 여객선 한 대 대신 200여대의 터널 통과 승용차가 제주를 채우게 될 것이다. 하루 50여편의 항공편이 줄고 자동차 5000여대가 들어와 2박3일 관광지에 2만여대의 자가용이 넘쳐날 것이다. 연료비와 공해 문제는 차치하고 혹 그렇게 해서라도 관광객이 늘어난다면, 수만 늘지 부가가치는 줄어든다. 해저터널마저 뚫린다면 트렁크에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산천계곡마다 고기를 구워대느라 자연도 망가지고 식당도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제주노선 때문에 겨우 유지되는 국내선 항공이나 연안여객선 시장이 위축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현재도 연간 가동률 30%에 불과한 렌터카 시장은 궤멸할 것이다. 다만 땅값은 올라갈 것이요, 단군 이래 최대 공사가 될 터널공사로 일부 대기업 토목꾼들은 좋아라 할 것이다. 자가용이 보편화되면서 ‘관광지 경주’의 매력은 오히려 쇠퇴했다고 한다. 설악동 관광단지도 폐허화된 지 오래다. 이 모두가 제 집 마당에서부터 최종 목적지까지 자가용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제주관광 요소를 황폐화한다면 해양관광 클러스터가 무슨 소용이랴. 터널을 이용한 산업단지도 말만 그럴싸할 뿐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 제주도 인구 50만명을 바라보고 전라도에 무슨 산업단지를 만들까? 시장 규모가 작고 물류비용 때문에 육지 시장을 겨냥한 산업단지 자체가 제주도에선 형성될 수 없다. 지금 단지도 비어 있는 형편에 또 무슨 땅에 울타리를 둘러 땅값만 올리려 하나? 터널이 생기면 제주 부동산값은 폭등할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 장사에 임대료만 올라갈 것이고 땅 한 뙈기 없거나 겨우 제 집만 가진 다수의 사람들은 나아질 게 전혀 없다. 김 교수는 영국이 탐냈다던 거문도 쪽으로 연결하여 군사적 요충지로 삼고 해저터널 자체는 난공불락의 지하벙커가 될 수 있으니 군사적 효용성을 고려하여 국방비로 간주해도 된다고 하고, 아니면 민자유치까지 거론하고 있는데, 전쟁이 나면 지하터널에 제주도민이 숨으라는 건지 합참의 지휘본부를 옮겨오라는 건지 어이가 없다. 그런 생각이라면 서울 지하철 부채를 국방부가 갚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민자유치가 가능하다 해도 일반도로 건설비보다 수십 배나 드는 해저도로를 민자로 하면 통행료가 항공료와 버금가서 이용률이 형편없을 것이다. 그건 엄청난 낭비다. 파급효과로 관광수익 1조원, 전남북과 경남의 제조업·물류업·서비스업 촉진 1조원 등 ‘제주 해저터널의 가치가 충분하고 환경훼손 비용도 없다’고 하는데, 아무런 근거가 없다. 물론 제주의 환경훼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행히 한반도 운하 대신 제주 해저터널을 주장하며 운하의 무익성을 들추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제주 입장에서는 차라리 제주 해저터널보다는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을 거쳐 제주로 오는 크루즈라도 만들 수 있는 운하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물류가 걱정이라 터널을 국비로 건설할 요량이면 항공사나 여객선사의 제주 관련 노선에 세제나 보조금을 지원해 주는 게 훨씬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관광객 유치가 걱정이라면 제주를 면세지역으로 만들어 관광 이점을 높이는 게 저렴하다. ‘섬’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터널은 분명 제주라는 섬의 가치를 훼손할 것이다. 이미 제주 색깔이 바래 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차라리 해저터널 꿈도 못 꾸게 제주도가 남쪽으로 200㎞쯤 더 내려갔으면 좋겠다. 기후도 더 많이 다르고, 사투리도 더는 흐려지지 않고 원형이 복원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제주적이니까. 지구 처지에서 보면 인간은 해충이라고 한다. 한반도 운하가 애물이면 제주 해저터널은 보물이 아니라 눈물이다. 세금을 잃는 국민의 눈물이요, 삶의 터전이 쇠락하는 제주도민의 눈물이요, 제주다운 제주를 잃는 관광객의 눈물이다. 토목공화국이여 제주 해저터널은 거론도 마시라. 제발 제주라도 그냥 놔두시라! 윤영국/제주여행가이드·제주관광대 관광경영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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