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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6 16:16 수정 : 2005.04.06 16:16

신용불량 문제의 핵심은 도덕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용불량자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중채무 상태에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이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는 것도 넌센스며, 상환유예니 하는 것은 잠꼬대에 불과하다.

우리 경제가 조금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는 듯하나, 외환위기 이후 극빈층으로 전락해 과중한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400만 신용불량자의 신음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혹자는 신용불량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사치·낭비·도박 등 개인의 도덕적 해이에서 찾기도 한다. 이런 비난이 극히 일부의 신용불량자에 대해서는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신용불량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경기침체로 인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도,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해고, 만성적인 실업, 금융회사(채권자)의 약탈적 고금리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불합리한 보증제도 등이 주된 것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에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경제부 등 금융 당국과 카드회사가 합동으로 시행한 신용카드 남발 정책이 그 직접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신용불량자의 도덕적 해이만 강조하면서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수수방관하다 최근 재경부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영세 자영업자, 미성년자, 대학생 등 생계형 신용불량자에 대한 채무상환 유예, 이자 감면, 공동추심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책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이번 대책은 신용불량 문제의 심각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부 대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용불량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부채의 원금을 감면할 수 없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용불량 문제의 핵심은 도덕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신용불량자가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에 비추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중채무 상태 탓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이미 상환 능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것도 난센스며, 상환유예, 이자감면, 공동추심이니 하는 것은 잠꼬대에 불과하다. 정부의 이러한 논리는 국회에서 제정된 파산법, 개인채무자 회생법에 근거하여 현재 법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인파산(현재 서울의 경우 95% 이상의 면책률을 보이고 있음), 개인회생제가 원금의 전부 또는 대폭 감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내용면에서도 매우 미흡하다. 신용불량자들이 이미 원금을 전부 또는 대폭 감면받을 수 있는 개인파산, 개인회생제가 있는데도 이를 도외시하고 과중 채무의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부채상환 유예, 이자 감면, 공동추심 등을 대책이라고 발표하는 것은 국민과 신용불량자들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금융회사들이 함께 출자해서 만든 민간기구에 불과한 신용회복위원회에 대부분의 소임을 떠넘기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채권자와 채무자와의 관계에서 최소한 중립을 견지해야 할 재경부가 앞장서서 신용회복위원회(채권자)의 논리와 제도를 마치 정부의 정책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으로, 이 역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도덕적 해이론이라는 편협하고 근거 없는 사고에 사로잡혀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신용불량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신용불량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대책은 공적 채무조정 제도인 개인파산, 개인회생제를 국민에게 널리 홍보하고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적 채무조정제에 대한 상담·교육·홍보·실무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할 공적인 기관을 설립·지원하고 관련법을 개정해 이용자들이 낮은 비용으로 불이익이 없이 쉽고 빠르게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400만 신용불량자들도 정부의 이번 대책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처지에 가장 부합하는 공적 채무조정제를 적극 이용하고, 그 제도의 대폭 개선을 정부에 촉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다음 선거에서 진정으로 신용불량자의 고통을 대변해 줄 정당이 어딘지를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김형남/한벗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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