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만약 당신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 위원장이 작성, 발표한 것으로 알려진 글을 당신의 블로그에 실었다고 치자. 당신의 블로그를 방문한 선·후배 또는 친구들은 그 글을 두고 갑론을박 토론글을 올린다. 누구는 김 위원장의 의견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의 발전에 장애물이 될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할 것이고, 또 누구는 귀담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도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하자라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당신 스스로도 토론장에 끼어 나름의 생각을 펼쳐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이 우리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조건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정보통신부 장관이 끼어들어 당신에게 ‘위 글을 블로그에 게시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것이니 삭제하라’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 삭제 명령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으름장과 함께. 당신이 정보통신부에 항의하니, 정보통신부의 대답은 ‘국가정보원이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서 삭제 요청을 해왔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라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에게는 부담스럽기만 한 정보통신부 장관 명의의 공문도 그렇고, 국가정보원 운운하는 형사처벌도 두려우니 우선 글부터 삭제하고 볼 일이다. ‘아직도 이러고 있나’라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아마 당신은 다음 번에는 북한 관련 글을 당신의 블로그에 싣기를 망설일 것이다. 당신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과 더는 이 일로 토론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블로그에서 오랜만에 의미있는 토론을 벌이는 일에 신이 나서 관련 글들을 모아 나르며 의견 올리기에 열성이던 친구도 당신이 당한 봉변 얘기를 듣고는 하던 일을 멈추고 문득 불안감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나도 찍혔으면 어떡하지?’ 다행스럽게도 삭제 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는다.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가끔씩 솟아나는 분함을 추스르는 것은 소주잔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 앞에 벌어진 이 상황 때문에 마음속 깊이 내상을 입은 것을 느낀다. 누가 이 상처를 치료해 줄 것인가. 국정원에서 삭제요청을 하면정통부장관이 명령하고
불응시 형사처벌하는 법이
어찌 통신망 이용촉진법인가
표현의 자유 위축될 것이 뻔하다 개정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이 2007년 7월 말부터 시행되면서 위와 같은 상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지난 9월18일치로 정보통신부 장관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민주노총,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민주노동당 등 13개 시민사회단체에 대하여 9월28일까지 위 단체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북한 관련 게시물의 ‘삭제’를 명령하였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7은 관계 행정기관(국가정보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를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이 삭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보통신부 장관이 위 단체들에게 밝힌 삭제 이유는, 위 단체들이 게시한 북한 관련 글들이 국가보안법 제7조(반국가단체 찬양·고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부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인터넷상 게시물들에 대하여 별도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위 ‘삭제 이유’는 국가정보원이나 경찰청이 삭제요청을 하면서 정보통신부에 전달한 ‘의견’으로 보인다. 개정 법률 시행전부터 ‘삭제 권고’ 통지를 했던 정보통신부에게 해당 단체들이 이의신청도 하고 의견도 제출하였지만 허사였다. ‘개정된 법률에 따른 조치’라는 것이 정보통신부의 변명일 것이지만, 위 법의 적용으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심각하게 위축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개정되어 시행된 정보통신망법 해당 부분은 2002년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 결정(99헌마480)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의 규정 내용을 ‘불온 통신’에서 ‘불법 정보’로 약간의 수정만 거친 것이다. 그 위헌성을 여기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에 대해서는 다시 곧 위헌 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의 최종적인 판단을 법원이 아닌 정보통신부(실질적으로는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 주도로)라는 행정주체가 편의적으로 한 후 인터넷상 정보를 통제하도록 만든 국회의 발상과, 개정 법률이 시행되자마자 삭제를 요청한 국가정보원 등의 발빠른 행보에 거수기 노릇을 하며 보조를 맞춘 정보통신부의 행태가 개탄스럽다. 도대체 이번 정보통신부 장관의 삭제 명령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 명칭에 어울리기는 하는가. 류신환/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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