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익/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교육국장
왜냐면 |
‘노가다’ 로 불리는 비정규·일용직 노동자들 |
먼지와 쇳가루가 날리는 작업현장, 길바닥, 비오는 처마밑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먹어야 하고, 차·길거리에서 팬티바람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경조휴가를 낼 수도 없어 부모상을 당해도, 마누라와 자식이 숨져도 사람 도리를 저버려야 한다.
밤이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불을 밝히는 울산 석유화학단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그리고 정유산업의 중심지 여수 석유화학단지를 오로지 두 손으로 일궈낸 건설플랜트 노동자들. ‘노가다’라 했지만 한때는 좋은 시절도 있어 큰돈은 아니더라도 자식들 공부시키고 밥은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산업역군도 아닌 비정규·일용직 건설플랜트 노동자로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 3월18일부터 울산지역의 건설플랜트 노동자 1천여명은 에스케이·삼성정밀화학·한화석유·에스오일 등과 전문 건설업체에 단체협상을 요구하며 14일째 파업을 하고 있다. 그들은 도대체 왜 사람들의 무관심과 일부 언론의 뭇매 속에서 힘든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머슴에게 일을 시켜도 밥은 먹이는 것이 기본인데, 밥값을 주지 않아 자비를 들여 밥을 먹으면서도 작업현장 안 식당을 사용할 수 없어 먼지와 쇳가루가 풀풀 날리는 현장 길바닥, 비오는 처마 밑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먹어야 하고, 작업현장 내 탈의실을 이용할 수 없어 차 안에서, 길거리에서 팬티 바람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하며, 냄새가 진동하는 엉터리 푸세식 화장실도 없어 작업현장 곳곳에서 눈치 살피며 담벼락을 찾아 용변을 봐야 한다. 아무리 막돼먹은 사람이라도 부모가 돌아가시면 죽음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데, 단하루 경조휴가도 얻을 수 없어 부모가 돌아가셔도, 심지어 마누라와 자식이 죽어도 일자리와 납기일을 위해 사람의 도리를 저버려야 한다. 그뿐인가,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땀이 범벅이 되어 곤죽이 되도록 일을 해도 사업장 내 샤워장을 이용할 수 없다. 안전화와 작업복이 지급되지 않음이 너무도 당연하고, 낡고 불량한 작업 보호구조차 늘 부족하게 나와 정품 작업 보호구를 지급해 달라고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다. 또한 실업과 고용을 반복하며 생존 위기에 놓여 있지만 사용자들은 우리 사회가 이들의 생존을 보장할 목적으로 운용하는 고용보험 등 어떤 사회안전망도 이들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이를 관리ㆍ감독해야 할 정부기관(노동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은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직무유기를 해왔고, 수십년 동안 너무나 당연한 일로 용인되어 왔다.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과 가치 따위를 기대할 수조차 없는 곳이어서 이들은 작업현장을 뛰쳐나와 길거리로 나온 것이다.
또 이들이 길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노조는 지난해 6월부터 파업 전까지 무려 9개월을 사용자들에게 단체협상을 요구했다. 이에 대한 사용자들의 태도는 한마디로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유업체를 비롯해 울산 석유화학공단의 발주처들과 전문 건설업체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조합원 색출과 취업금지 등의 조처를 취해 지난해 1월9일 노동조합 설립 이후 에스케이와 삼성정밀화학에는 단 한 명의 조합원도 취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업체들의 부당 노동행위와 노조 탄압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전혀 사법처리도 하지 않으면서 지난해 6월 위원장 구속과 20여명의 조합원이 처벌을 받았다. 이것이 ‘협력적 노사관계’라는 구호에 가려진 노동현장의 구체적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부나 검찰은 우선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법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갖추어 행사되는 노조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사용자들이 불법행위와 부당 노동행위로 유린해도, 9개월 동안이나 단체교섭을 거부해도, 사회보험법(고용보험·의료보험·산재보험·국민연금 등)을 집행하는 기관들의 직무유기도 어느 누구 하나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사용자들의 고소·고발에 대해서는 소환장에 체포영장까지 발부하는 이런 법집행을 누가 공정한 법집행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울산지역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나오게 만든 또다른 이유다.
최근 울산 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위원장을 비롯해 지도부 5명의 체포영장이 나왔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경찰 병력들이 울산으로 집중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이러한 행동은 최소한의 공정성을 상실한 법집행이며, 울산 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만일 검찰과 경찰, 노동부가 울산 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을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온갖 악행과 불법행위를 바로잡고, 대등한 노사관계의 형성을 통하여 그들이 일하는 작업현장에 상생의 노사문화가 자리잡도록 하겠다는 인식과 의지를 지녀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편파적 법집행이라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익/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교육국장
이동익/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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