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학교보건법’ 을 우려한다 |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강검진을 성인의 잣대로 보지 말라. 학교 신체검사가 또다시 형식적인 집단검진이 되지 않도록 ‘단골의사 또는 일차 의료기관을 통한 개별적인 건강검사’ 실시에 대한 내용을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의 세부안에서 명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법률 개정도 고려해야 한다.
세 아이의 아비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의’이기도 하다. 해마다 초등학생들의 몸검사를 하는 5월이 되면 한바탕 홍역을 치러왔다. 900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하루 또는 이틀에 걸쳐서 검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설문지를 일주일 전에 받아서 세심한 검토와 함께 문진을 바탕으로 하여 몸 검진을 진행하였다.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학교 신체검사 개선안을 포함하는 학교보건법 개정안이 얼마 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개정법에는 3년마다 건강검사를 하여 학생 건강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 건강증진 계획을 수립·시행하며, 학교장과 국가, 지방자치단체가 학생과 교직원 건강 보호·증진의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해 학교보건의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은 건강한 시기의 어린이들에게 임상검사 중심의 건강검진을 시행하자고 발의한 교육부의 개정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현행 고등학교 1학년의 신체검사가 집단 검진이 되어 형식적인 진행과 질 저하는 물론, 개인 비밀 보장의 어려움, 검진기관의 빈번한 로비 등이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음을 관계자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학생 개인이 평소 다니던 의료기관에서 개별 진찰을 통해 학생들의 신체, 정신, 사회심리적인 건강 수준을 평가하도록 하자는 최순영 의원 안의 내용이 개정안에 거의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다만 국회 교육위원회의 법안 심의과정에서 집단 검진의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개별 진찰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하니 지금부터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린 학생들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개정된 학교보건법 시행 전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한다.
첫째,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강검진을 성인의 잣대로 보지 말라. 학교 신체검사가 또다시 형식적인 집단검진이 되지 않도록 ‘단골의사 또는 일차 의료기관을 통한 개별적인 건강검사’ 시행에 대한 내용을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의 세부안에서 명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법률 개정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교육부는 학생들의 건강증진에 필요한 건강조사서와 검사 내용을 규정하기 위하여 어린이와 청소년 건강에 관련된 시민단체와 전문가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야 한다. ‘한국인의 평생 건강관리’ 등을 통해 생애 주기별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참고하여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학년별 건강검사 내용과 항목을 결정하여야 한다.
셋째, 교육부는 학생 신체검사안이 전면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대도시와 농촌, 일반 초중고와 특수학교 등 다양한 지역의 학교를 대상으로 공개적인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과정상의 문제점을 개선 및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 규정에 따른 검진기관’에 의뢰하여 시행한다고 규정하여 지역사회에서 소아와 청소년을 진료하는 의사들의 접근을 배제하였는데, 이는 건강한 학교를 위해 지역사회와 밀접한 연계를 강조하는 추세와 정반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12년 동안 지역사회의 단골의사 또는 주치의와 상담과 정기적인 예방서비스를 통해 건강한 행동 습관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학교보건법’이 앗아가게 할 수는 없다.
홍승권/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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