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폭력의 사슬과 ‘착한 일본일들’ |
어떤 이는 말한다. 1억2천만명 일본인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하든, 잘못된 역사 교과서를 통해 극우화하든, 묵묵히 자기들 삶을 착하게 살고 있다고. 그러나 착한 사람의 숫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일본의 ‘악마’들은 한국 진출 준비가 되어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는 유대인들에 대한 다큐나 영상물들을 보다가 품는 의문은 늘 똑같다. 어째서 저들은 저렇게 순순히 끌려가 죽고 마는가? 영상물 <쇼아>를 보면 2천에서 4천명씩 죽이러 가는 열차에서나 수용소 길에서나 죽는 사람 수에 비해 죽이는 수는 훨씬 적다. 비록 그들이 무기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일단 숫자면에서는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몇 십배, 백배 더 많다. 그런데도 그들은 순순히 끌려가 죽는다. 왜 이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길이 없는데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폭력의 문제인 한 그것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 말이다. 그것은 순전히 악의의 문제이고 권력의 문제일 뿐이란 점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1억2천만여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은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하든 잘못된 역사 교과서를 통해 일본을 극우화해서 남 나라에 원자탄을 뿌리고 그들도 다시 원자탄 맞을 준비를 하든 묵묵히 자기들 삶을 착하게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일본 정치권에서 떠드는 말에 너무 흥분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백번 맞는 말 같은데 그게 아니다. 예를 들면 현재 미국이 이라크를 쳐들어가 마구잡이로 이라크인들을 죽이는 야만행위를 벌이는데 과연 미국인 모두가 다 그에 동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천만에다. 마음속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임에도 그들은 그런 짓을 저지른다. 그들은 누구인가? 폭력사슬에 얽힌 이익집단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인간 사회는 폭력사슬에 얽혀 사는 인종과 참는 사슬에 묶여 사는 인종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악마에 편승해 사는 종속과 악마를 안 보려고 참는 사슬에 묶여 사는 족속이 있다는 말이다. 악마는 남을 먹이로 삼으려는 모든 인종을 말한다. 악마의 종류는 대체로 돈을 엄청나게 많이 가진 자들과 그것을 보호한다고 국민의 이름을 빌려 권좌에 앉은 자들, 그들의 하수인인 관료배들, 그들의 또다른 심부름꾼들이다. 그들은 폭력사슬에 얽혀 사는 족속이다. 폭력사슬의 개수는 별로 많지 않다. 많으면 나눠 먹을 거리가 작아지니까 그들의 수는 적을수록 좋다. 한국의 토지 소유자들의 범위를 잘 헤아려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몇% 안 되는 수의 악마들에게 참다가 죽는 족속은 언제나 빼앗기거나 먹히고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다윈 이야기 부류가 아니다.
일본 악마들은 이제 한국으로 진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 1905년에 맺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지금도 살아 있다면 일본의 진출 기회는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착한 사람의 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우리가 바라는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폭력의 악마 무리에 서지 않는 사람으로 거듭 나서야 한다. 숫자로 현상을 파악하다가는 번번이 망하고 만다. 임진왜란 이야기나 한-일 늑약 따위의 역사를 잘 보면 그런 게 보인다.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분명하게 우리를 먹이로 여기는 판임이 뻔히 보인다.
정현기/연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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