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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3 16:27 수정 : 2005.03.23 16:27

일본인들의 행위에 대해 따지는 일 만큼 우리의 역사인식이 중요하다. 역사 해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록이다. 조선시대 사관들의 엄격한 기록정신은 귀중한 유산이다. 제대로 역사를 가르치는 것과 함께 오늘의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는 게 필요하다.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곳곳에서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행위를 두고 따지는 일 못지않게 우리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행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낱말에는 그 시대와 상황을 압축하여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역사적인 뜻을 담고 있는 낱말들은 항상 올바르게 표현되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만 한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 언론매체와 우리 이웃들은 ‘이조시대, 한-일 합방, 민비 …’ 따위 일본인들이 만든 잘못된 낱말들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그 민족의 자존이 항상 중심에 놓여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선조들의 행위에 대해 자부심보다는 비판의 내용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의 예로서 사색당쟁을 조선조가 멸망하게 된 원인의 하나라고만 가르칠 뿐이고, 그 긍정적인 면은 생각조차 않고 있다. 논리적이었고 철학적이었던 조선시대 당쟁은 한편으로는 파당싸움이었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오늘날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정치 논쟁이었다. 비록 직접 선거로 뽑힌 국민의 대표자는 아니었을망정, 또 백성의 10%도 안 되는 양반층 뜻만 대변했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대신들의 어전회의나 나라 대사에 대한 논쟁들은 오늘날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논쟁 못지않게 수준이 높았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 못지않게 또 중요한 것이 제대로 된 기록이다. 기록이 많고 정밀할수록 더 정확한 역사가 만들어진다.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물도 왕의 행적에 대한 정밀한 기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왕들은 움직임 하나하나도 임금 옆에 두 명의 사관들이 앉아서 보고 들은 그대로 기록하였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조선왕조실록>이 만들어졌다. 비록 사관들이 기록한 원래의 기록물은 취사선택을 거쳐 실록에 기록된 후 물에 씻겨져 사라졌지만, 그래도 사관들의 엄격했던 기록정신은 실록에 살아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가 끝나고 일제 강점이 이루어지면서 우리의 기록문화는 중단되었다. 광복 이후에도 외세의존 시대와 군부독재 시대로 이어지면서 기록문화는 복원되기는커녕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적당히 얼버무린 간략한 기록물이나 아니면 기록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못할 회고록 부류의 얼치기 자료들로 채워지고 있다.

‘일제 36년’이라는 낱말도 적당히 얼버무려 왔던 역사기록의 모습을 보여주는 슬픈 풍경이다. 경술국치를 당한 날은 1910년 8월29일이다. 그리고 광복을 찾은 날은 1945년 8월15일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일본에 강점당한 기간은 34년 11개월 16일 간이다. 이를 우리나라의 언론매체들과 일부 사람들은 연도만 따져 ‘일제 36년’이라고 부르고 있다. ‘국치 35년’이나 ‘일제 강점 35년’이라는 표현을 써야 함에도 지금까지 많은 언론인들과 자칭 지식인들은 남한테 지배받은 뼈아픈 고통의 기간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관들이 지닌 엄격한 기록정신은 지금부터라도 이어받아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만 하는 귀중한 유산이다. 이런 정신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저 한탄만 하거나 무시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후손들에게 무시받는 선조가 될 것이다. 또 그렇게 된다면 우리 후손들도 다른 나라 문화만 숭상하는 어리석은 후손들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우리 겨레의 바른 정신이 어디에서 만들어졌고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제대로 아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제대로 정리하여 알려주는 역사교육과 함께 오늘의 역사도 제대로 기록하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김봉진/서울시 노원구 월계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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