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인/충남대 사회대 교수
왜냐면 |
누가 이름을 짓는가? |
누가 이름을 짓고 세상사를 정의하는가? 힘있는 사람과 세력있는 집단이다. 이라크를 침략한 이래 미국은 엄청난 학살과 파괴, 포로학대 등 전쟁범죄를 자행했지만, 그들의 용어에는 침략도 학살도 파괴도 고문도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멀리 퍼뜨리려는 숭고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누가 이름을 짓고 세상사를 정의하는가? 힘있는 사람과 세력있는 집단이다. 그들이 현실 적합성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상황을 정의하고 이름을 붙이면, 매체들이 앞다투어 이를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자기도 모르게 ‘세뇌’되고, 어떤 의미로는 ‘허위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총칼로 정권을 잡아 폭압정치를 열기 시작한 5·16 군사반란은 31년이 지나고 나서야 군사 쿠데타라는 올바른 이름을 얻게 되었고, 1980년 봄 광주에서 민주화에 몸바친 젊은이들은 오랫동안 ‘폭도’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문화재청장에게 편지를 보내 광화문 현판 교체를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로 묘사했다는데, 정말로 치열했던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는 5·16 쿠데타 이후에 일어난 헌정질서 중단과 폭압정치였다는 것을 그는 잊은 듯했다. 과거와 현재의 친일파들이 ‘민족 반역자’라는 정당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여전히 고상한 엘리트 집단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들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높은 위상과 건국 이후 누려온 영화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세력있는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는 편향된 이름을 바로잡지 않는 한 나라는 희망이 없다. 그러기에 한 제자(자로)가 공자에게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이름을 바르게 하겠다”(必也正名乎!)고 대답했다. 의아해하는 제자에게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씀이 옳지 않고, 말씀이 옳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정당함을 잃으며, 형벌이 정당함을 잃으면 백성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름 바르게 짓기에는 맹자도 큰 관심을 표명해서, 폭군(여기서는 紂)은 군주가 아니라 필부에 지나지 않고 폭군을 처단한 것은 군주를 시해한 것이 아니가 필부를 주살할 것이라고 정의했다.
초강대국인 미국은 당연히 이름짓기에도 큰 위력을 발휘한다. 미국의 지도자가 지은 이름은 매스미디어를 타고 세계에 퍼져서 즉시 공인받은 학설이 된다. 가장 전쟁을 자주 일으키고 가장 많은 대량살상 무기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가장 위험스러운 나라인 미국이 어떤 나라를 ‘불량국가’, ‘악의 축’이라고 부르면 그 나라는 그 ‘고깔’을 좀처럼 벗기 어렵고, 또한 어떤 나라를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듣기 거북한 말로 부르면 그 나라는 금방 이상한 기지로 변한다.
이름짓기는 세력있는 집단의 특권인지라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선주민(인디언)들을 대량 학살하고 그 땅을 빼앗고도 이를 ‘신의 뜻’이며 ‘명백한 운명’이라고 이름짓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멕시코, 필리핀, 니카라과, 파나마 등 수많은 나라와 침략전쟁을 벌이고 베트남에서도 수백만을 죽이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는데, 그러한 유혈과 살육은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필요한 조처였다.
2년 전 3월20일 국제연합의 결의를 무시하고 이라크를 참략한 이래 미국은 지금까지 엄청난 학살과 파괴, 포로학대와 고문(심지어 포로사살) 등 전쟁범죄를 자행했다. 물론, 그들의 용어에는 침략도 학살도 파괴도 고문도 없다. 단지 ‘자유민주주의’를 멀리 서아시아까지 퍼뜨리려는 숭고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이라크인이 겪는 고통과 학살, 만행의 확산이 부시의 용어로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온세계에 자유를 확산시키는 일이다. 사실 미국 지도층이 말하는 자유는 곧 미국의 이익을 뜻하는 것이며, 미국인들은 자국의 이익에 부합된다면 언제라도 타국에 대해 무력을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한편으로는 더러운 전쟁을 일으켜 매일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와 평화를 말하는 미국 대통령의 행동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노자가 그랬던가, 사람들이 짓는 이름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名可名, 非常名)라고. 미국이 말하는 자유의 확산이 더는 많은 사람에게 유혈과 박해의 확산을 뜻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동인/충남대 사회대 교수
이동인/충남대 사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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