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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0 15:43 수정 : 2005.03.20 15:43

일본 시민사회를 향해 이렇게 말하자.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양국 풀뿌리의 지혜와 전통에 따라, 독도가 독도로서, 아름답게 보존되도록 하십시다.”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을 둘러싸고, 또한번 ‘반일 열풍’이 불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목소리로, 이 사태를 ‘도발’ 또는 ‘침략’으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와 우익을 규탄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움직임이 군국주의화, 팽창주의화 흐름에서 나온 것이라는 우리 사회 전반의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는 물론 정당하다. 특히나 교과서를 통한 과거사 왜곡문제 등과 겹쳐,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각별한 위기감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도 문제’를 두고, 갑자기 진보와 보수, 여와 야도 없이 ‘반일’을 외치는 상황을 결코 건강한 사회 반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지난 16일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시마네현의 ‘조례 제정’과 관련해 발표한 성명서는 평소 민주노동당에 애정을 갖고 있던 한 시민으로서, 적잖은 실망감을 주었다. 다른 것은 두고라도, 독도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면서, ‘독도 국군주둔’, ‘독도 개발’ 따위를 주문한 것을 보고는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 작고 여린 돌섬 위 어디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 섬의 어느 부분을 개발하라는 것인가? 설마 민주노동당의 성명서가 저열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리라 믿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 전반의 자연환경, 소위 ‘국토’를 대하는 태도와 인식의 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착잡해진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좀더 근원적이고 비판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차라리 우리는 일본의 시민사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풀뿌리 민중들은 그러한 자연의 섬인 독도를 인간의 탐욕과 국가주의 논리로 ‘소유(영유)’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본과 국가의 개발·팽창 논리로부터 이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섬을 당신네 지도자들과 우익 세력이 굳이 이제 와서 차지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굳이 이런 식으로 평범한 민중의 삶 속에 긴장의 날을 세우려 하는 여러분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획책하려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당신네 일본 정부가 과거, 우리 한국의 민중들에게 어떠한 고통을 끼쳤는지 새삼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 한국 민중은 이번 독도에 관한 당신들 지도자들의 움직임이, 과거에 그랬듯이 또다시 동북아시아와 세계에 ‘제국주의적인 힘’으로써 팽창해 나가겠다는 터무니없고 부도덕한 야심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우려는 여러분, 일본 민중들에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팽창과 정복, 전쟁에의 유혹은 어느 나라든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지배세력과 권력 엘리트들의 것이지, 하루하루를 노동하여 정직하게 먹고사는 풀뿌리 민중의 이해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는 것을 일본의 형제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아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자연은 인간이 ‘소유’하거나 함부로 훼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옳다고 조상들로부터 배워왔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랬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양국 풀뿌리의 오랜 지혜와 전통에 따라, 독도가 독도로서, 자연이 자연으로서 아름답게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십시다. 자연을, 독도를, 국가주의와 군국주의라는 더러운 명분으로 함께 짓밟는 어리석음에 동참하지 맙시다. 독도는 독도이기도 하고, 당신들에게는 ‘다케시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이 붙인 이름일 뿐,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 아닙니까.”

‘국가’가 긴장을 부추길수록, 우리는 국경을 넘어 풀뿌리의 연대를 돈독히 해야 한다. 나아가 모든 자연환경은 한 나라의 소유물이기 이전에, 생명공동체의 복잡한 그물망을 이루고 있는 형제라는 존경심을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

변홍철/<녹색평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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