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대학생들 사이에 공무원 시험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은 새삼 놀랄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씩 취업 도피용으로 공무원 시험을 선택하는 사례를 목격하면서, 그리고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이 해마다 경신되는 현상을 보면서 지금의 공무원 채용시험이 과연 제대로 된 공무원을 뽑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묻고 싶다. 과연 이러한 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번의 시험으로 공무원의 자질을 완전히 평가할 수 있는지, 시험을 통해 알아보려는 공무원의 핵심 역량은 과연 무엇인지를. 공무원으로서 중요한 핵심 역량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들의 연표 및 맞춤법에 대한 암기가 아닌 다른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소신, 그리고 적극적인 창의성이다. 어떠한 비리와 부패 유혹이 있는 상황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소신, 그리고 제도를 고안해내고 개혁할 수 있는 적극성과 창의성 말이다. 과연 이러한 것들이 시험을 통해 평가될 수 있는 것들인가?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지,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행정을 수행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시험으로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기막힌 노릇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수년 동안 책 붙잡고 공부하여 통과한 사람을 단 몇십분의 면접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 이제는 공무원 채용 방법도 기업 공채처럼 큰 혁신이 필요하다.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지,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행정을 수행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시험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테면 면접 혹은 자기소개서 및 논술시험을 통해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을 꼼꼼히 보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현행 채용 과정에서도 필기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을 면접한 뒤 최종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얼마나 기막힌 노릇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수년 동안 사설학원을 다니면서 책 붙잡고 공부하여 통과한 사람을 단 몇십분의 면접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 그렇게 공부한 수험생들이 정녕 면접관들의 자식들이라면 과연 불합격시킬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수험생은 봉이 아니다. 암기의 달인을 뽑을 것인지, 사람 됨됨이를 볼 것인지 명백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오히려 지금과는 반대로 면접에서 합격한 사람들에게 시험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효율적인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의 필기시험도 그 목적과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이를테면 국사는 단순한 연표와 사건 암기가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알아보는 시험으로, 국어는 수많은 문법을 암기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쓸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알아보는 시험으로 고쳐야 한다. 사람인 이상 아무리 많은 것을 암기하고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기본적인 소양으로 알아봐도 충분한 시험 과목들에 1∼2년씩 투자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큰 낭비인가? 정말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 어렸을 적부터 소신을 갖고 공무원의 꿈을 꾸어온 친구들이 단지 아슬아슬한 시험 성적 때문에 낙마하고 포기해버리는 경우, 그들은 절망하게 된다. 물론 시험도 중요하다. 하지만 시험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정부는 합격 커트라인 점수가 공무원의 핵심 역량을 온전히 측정해주는 지표라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공무원다운 공무원을 뽑는 시험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뽑은 뒤에도 과연 그 공무원이 얼마나 국민을 위해 봉사했는지, 국민을 위해 어떠한 제도를 얼마나 개혁하고 만들어냈는지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철밥통, 문서편의주의, 군대식 닫힌 문화를 연상시키는 지금의 공무원 이미지가 아닌, 상식과 정도가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이미지를 가진 공무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강태욱/서울 서대문구 홍은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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